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날 것을 합의했을 때 두 정상이 손을 맞잡는 컴퓨터 그래픽 속에서 미리 만나고 있던 생소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속전속결로 ‘2018 남북정상회담’을 결정한 김정은 국무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을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으로 돌파하는 모습으로 집안단속을 하는 동시에 체제유지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우리는 북측의 핵개발 포기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 기조를 굳히고 추가적으로 민간교류, 남북경협 등을 이끌어 내 주도적 남북관계를 주변국과의 외교카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미·중·일·러 주변 강국의 셈법이 너무 다르고 복잡하고, 북측의 속내가 어디까지 진정성을 가졌느냐 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6.15 공동선언이 있었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두 번째로 방북했다.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학술교류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남북관계는 급랭했고 정상회담의 성과는 알맹이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2018 남북정상회담’은 우리에게도 북측에게도 중대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이왕 세기의 지상최대 쇼(Show)가 될 것이라면 흥행을 확실히 시켜야 한다. 그 흥행의 가속도에 따라 예기치 못한 통일의 단초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보면 조금은 김새는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도 또 그렇지 말라는 법도 없다.
독일은 1982년 슈미트 서독 총리가 1982년 동독을 방문하고, 1987년 호네커 동독 공산당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하며 독일 통일의 분위기가 만들진 가운데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 영향으로 동독의 독자 행보가 가능했고, 서독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통해 결국 미·영·프·소가 참여한 6자 회담으로 1990년 10월3일 통일을 이룩했다.
그런데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과정은 해프닝이다.
1989년 11월9일 당시 동독 여당인 통일당 지도부였던 귄터 샤보스키는 정부의 여행자율화 방침의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여행자율화가 서독을 포함해 ‘지금 당장’ 시행된다”고 답변한다.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로써 그 다음날인 1989년 11월 10일 새벽까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장면을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은 생중계로 목격하게 됐다.
그로부터 1년 뒤 독일은 냉전시대 분단을 종지부 찍고 통일국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실수로 인해 연출된 초유의 역사적 쇼는 지금의 독일이 결국 유럽 정치와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면서 미국, 러시아와 협상하는데 있어 유럽의 선봉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발판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번 ‘2018 남북정상회담’이 북측의 불리한 정세 전환용 2중 전술이든지 김정은 국무 위원장의 전략적 방향 전환이든지 기왕 지상 최대 쇼가 펼쳐지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동북아 안보와 경제 가교의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고 외교 협상의 역량을 높여 최대한 ‘유리함’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