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앞으로의 며칠은 우리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다.
북한은 지난 21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라는 선제조치를 내놓았다. 아직 신중론도 만만치 않지만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비핵화 논의는 동북아의 외교 안보 지형을 바꿀 ‘빅 이슈’로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의 전기가 마련된다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누구도 이루지 목한 ‘외교적 쾌거’를 이루게 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전력투구하는 인상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재팬 패싱’ 차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양새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동북아에서의 존재감 각인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일단 북한의 선제 조치에 환영 일색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라고 추켜세웠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수준 향상에 역량을 집중한다고 밝힌 데 대해 환영을 표한다”고 했고, 러시아 외무부도 “해당 결정은 한반도 긴장의 추가적 완화와 동북아 정세 정상화와 관련한 긍정적 흐름의 공고화를 위한 중요한 행보”라고 반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부터 청와대 참모진 회의 등 내부회의에만 집중하고 외부 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정상회담 막바지 준비에 ‘올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의 첫 단추가 될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국정의 모든 동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북한의 선제조치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비핵화 로드맵을 더욱 깊이 있게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도 감안한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미국이 요구해온 ‘선(先)조치’를 단행한 것을 계기로 정상회담 합의문에 더욱 수준 높은 비핵화 선언을 담는 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핵심의제인 비핵화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달렸다.
북한은 미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이크 폼페이오의 방북을 통한 의견교환 후 핵실험장 폐기조치와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선언함으로써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 원칙을 내세우며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강조해온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비전을 합의문에 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첫 관문인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그걸 바탕으로 북미정상회담에서 체제 안전보장·평화체제 구축이 맞물린 비핵화 논의가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 노선을 선택했다. 이제 한미 양국이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