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7일 오전 10시 서울 경찰청에 출석, 18일 오전 5시까지 20여시간 조사를 받았다. 황 회장은 KT 전현직 임원들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회의원 90여명에게 KT법인 자금으로 4억3000여만원을 후원했는데 그가 이를 묵인했거나 지시했는지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황 회장은 조사 과정에서 이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 3월 KT 회장에 취임한 황 회장은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다음날인 18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임기 2년을 남겨두고 돌연 사퇴를 표명했다. 권 회장은 이날 오전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임시이사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권 회장은 2014년 3월 정준양 전 회장 후임으로 선출돼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0년까지다. 권 회장은 사퇴 배경과 관련 “포스코가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한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CEO 변화“라며 ”열정적이고 젊고 능력 있는 분에게 경영을 넘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직을 유지할 예정이다. 포스코 내부에선 차기 회장 선임까지 2~3개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오준 회장과 황창규 회장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황 회장은 2014년 3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KT 회장에 올랐다. 올해 3월엔 연임에 성공했다. 재계 내부에선 문재인정부의 사퇴압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황 회장은 이번 정부에서도 임기를 채우겠다며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권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박근혜정부 수혜자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지난 3월 마찬가지로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황 회장이 경찰조사에 들어가면서 두 인사의 상황은 급반전됐다. 버팀목이던 권 회장까지 사의를 표명하면서 황 회장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연관성은 또 있다. 이른바 ‘찍어내기’ 피해자란 점이다. 새정권이 들어서면 KT와 포스코는 늘 CEO 리스크에 휘말렸다. 우리 국민은 새정부가 전 정권에서 선출한 CEO를 대상으로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만약 해당 인사가 버티기 전략에 들어가면 과거의 불법 혐의 등을 찾아내 법적 잣대로 심판하는 악습의 악순환을 오래 전부터 지켜봤다. 이번 권 회장과 황 회장의 중도사퇴 혹은 중도사퇴설도 사실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일찌감치 재계에선 예측한 시나리오였다.
당연히 국민들의 피로감도 누적될 수밖에 없다. 물론 불법을 저질렀거나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사라면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밝히고 법적인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이전 정권에서 특혜를 받은 인물이라면 역시 정확한 잣대로 여론의 동정을 살펴 인사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며 명분이다.
황 회장이 만약 중도 사퇴했거나 연임을 포기했다면 이번처럼 경찰에 조사를 받았을까. 권 회장이 중도사퇴를 하지 않고 버티기 전략에 나섰다면 추후 경찰조사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볼 때 문재인정부 역시 찍어내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중도 사퇴와 불법 행위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인사교체보다 악습의 고리를 끊는 작업이 먼저 시행돼야 한다. 우리 국민도 그것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