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정부가 고등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했다. 이 개정안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점을 자국 고교생한테 교육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 철회를 엄중히 촉구하면서, 독도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을 미래세대에게 계속 주입한다면 과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로서, 정부는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이 신비한 바위섬은 실로 긴긴 세월 동안 거센 풍랑을 견디면서 동해 푸른 바다를 꿋꿋이 지켜왔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 국민 마음속에는 늘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국토의 동쪽 끝자락을 향한 그리움이 있다. 사랑과 관심은 수천 년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커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들로서는 어떤 경우든 독도 영토 주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외부의 문제 제기나 영유권 주장에 기가 찬다.
이처럼 분명한 우리의 자세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강점 시기에 시작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일본의 노골적인 독도 침탈 시도는 집요하고 교묘하다. 독도 문제는 해방 후 한일회담 과정에서 줄곧 일본이 들고 나온 주요 의제였다. 어떤 회담은 독도와 해양주권선을 두고 다투다가 끝났다. 5·16 이후 상황 전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국고가 텅텅 비어 일할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고 청구권 자금을 받아내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다.
이때 일본이 회담 테이블에 가지고 나온 것도 독도 카드였다. 일본은 청구권과 한일협정이라는 커다란 해결과제를 두고 독도 영유권 이슈를 들이밀어 흥정하려 했다. 돈을 줄 테니 독도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한·일 간 상호 이견으로 난항을 거듭하면서 미국이 회담 중재에 나섰다. 한·일 양국이 독도에 등대를 세워 공동 소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 정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다시 독도 문제를 다룰 외무장관 회담을 제의했고, 이 역시 우리 정부에 의해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차례 좌절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일회담 중 독도에 관한 주장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심지어 1965년 6월 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자리에서조차 독도 문제를 물고 늘어졌지만 한국 측 거부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의용수비대에 맡겼던 독도 경비임무를 경찰로 옮기고, 최종덕 씨가 독도로 이주해 터를 잡았다. 근래에는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등 실효적인 행정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 대응이 단호해질수록 일본인들의 억지와 왜곡은 도를 지나쳐 급기야는 고등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기까지는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국민적 독도 수호의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지만, 이를 위한 논리 개발과 실증자료 확보 노력은 다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는 독도의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역사적 고증을 통해 해결책을 찾기보다 민족 감정으로 접근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정작 독도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등장할 때마다 금세 타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단발성 애국정서가 아니라 진득한 전투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