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유령주식’ 사태를 일으킨 삼성증권에 대해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단순한 개인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기보다는 회사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업정지’나 ‘인가취소’도 배제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금감원은 11일 삼성증권에 대해 본격적인 현장점사에 들어갔다. 지난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특별점검은 사고원인 파악과 투자자 보호조치, 우리사주배당 사고와 관련된 결제 이행 과정을 지켜보기 위한 것이었다. 오는 19일까지 진행될 현장검사는 문제를 일으킨 전반적인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파악한다. 금감원은 사고의 발생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자본시장법 등 법률상 위반사항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물론 삼성증권을 법규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태는 직원의 단순실수와는 거리가 멀다.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주식’이 28억주, 110조원이 넘는 규모로 발행됐는데 시스템경고가 발동되지 않고 거래까지 이뤄진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삼성증권이 문제를 인지하고 거래정지 조치가 이뤄지는데 ‘37’분이나 걸렸다는 점도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 삼성증권이 사고 후 사내방송을 하고 팝업창을 띄우면서 거래 금지를 알렸는데도 직원들이 주식을 내다팔고 매도를 시도했다는 점도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증권사이기를 포기한 행위다. 삼성증권 법인뿐만 아니라 유령주식을 내다 판 직원들은 물론 시스템 담당임원도 중징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시장 반응도 냉랭하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등 주요 연기금들이 삼성증권과의 거래를 끊었다. 배당사고 이후 삼성증권의 거래 안정성에 신뢰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큰손’ 국민연금은 이번 사고가 삼성증권의 시스템결함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지난 9일부터 국민연금기금의 주식직접운용에 한해 삼성증권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위탁운용 거래중단 여부는 감독원의 조사결과를 보고 결정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삼성증권과의 거래를 중단하자 다른 연기금도 잇따라 거래를 끊었다. 사학연금은 6일 이후 삼성증권 계좌로 주문하지 않고 있고, 11일부터는 직접운용은 물론 자산운용사에 맡긴 위탁운용까지 모두 거래를 잠정 중단했다. 공무원연금과 교직원공제회도 삼성증권과의 거래중단을 결정했다.
‘관리의 삼성’이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처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평가다. 근래 한 달 새 삼성에서 벌어진 대형 악재만 3건이다. 특정 관계사의 개별문제가 아니라 삼성그룹의 위기 신호로 볼 수 있다.
지난달 9일엔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 반도체공장에서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직접적인 손해액만 500억원이 넘는다는 소식이다. 업계에서는 피해 규모를 떠나 지난해 하반기에 준공된 반도체공장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21일엔 평택반도체공장 인근에 있는 삼성전자 물류창고에서 직원 1명이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자꾸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거대한 함선도 기본적인 것이 무너지면 좌초한다는 점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