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등' KAIST의 안전관리 대응체계 유감
[기자수첩] '1등' KAIST의 안전관리 대응체계 유감
  • 백승룡 기자
  • 승인 2018.04.0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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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라는 우수한 학교는 안전관리대응도 우수할 것이라는 기대가 지나쳤던 것일까. 열흘 전 KAIST에서 한 청소근로자가 '불산'이라고 표시된 플라스틱 용기를 발견했지만 청소용 락스로 오인, 다른 락스 용기에 붓는 과정에서 락스와 불산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학교 측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첫번째 실망은 안내시점에 있다. 누출사고는 오후 2시43분에 발생했지만 '가급적 조기 퇴실을 권장드린다'는 첫 안내 문자는 저녁 8시55분에야 발송됐다. 6시간이 지나서야 조기퇴실을 권유한 것이다. 청소근로자가 엠뷸런스를 통해 응급실로 이송된,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우선순위는 문제발생 안내 및 출입통제여야 했다. 하지만 KAIST는 '결론적으로 안전하다'는 발표를 위해 6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내부적으로만 진상파악에 나섰다. 그 사이 혹시 모를 피해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안내 체계였다. 6시간 만의 첫 안내 문자, 그마저도 '랩장'이라는 학생 대표 14명에게만 발송됐다. 안내 전파를 학생 대표에게 떠넘긴 것이다. 같은 시간 교수들에게는 전체적으로 문자를 보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후 10시가 넘어서 입주 연구실 대학원생에게, 다음날 정오 무렵에서야 전체 구성원에게 안내 메일이 발송됐다. 이 과정에서 늦게까지 안내를 받지 못한 재학생들은 입소문으로 누출 내용을 전해 들으며 학교 측에 배신감을 느껴야만 했다.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학교 홍보문자는 귀찮을 정도로 보내면서 왜 이런 안내문자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랩장으로부터 전달 받아야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일에는 캠퍼스 내에 KAMF(카이스트 아트&뮤직 페스티벌)가 열리면서 벚꽃과 페스티벌을 즐기려는 외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 역시 불산 누출사고와 관련해 어떠한 안내도 받은 것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학교 측의 해명 내용에 실망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학교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담당자는 2가지 부분을 해명했다. 우선, '누출사고'가 아니라는 것. 청소근로자가 곧바로 락스용기 마개를 닫아 외부 유출이 없었고 가스디텍터로 측정한 결과 불산이 0.0ppm으로, 불검출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체 특성상 100% 차단이 가능한지, 검출 기준치에 미달해 '불검출'된 것과 '누출이 전혀 되지 않은 것'은 다르지 않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 또한, '안내사항 전달'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학교 측은 랩장에게 문자를 배포하고 랩장들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연락 구조를 취한다고 했다. 그러나 홍보문자는 일괄적으로 발송되면서 안내 문자만 랩장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 왜 '통상적'인지, 비상 시 행정매뉴얼은 어떻게 되어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역시 답이 없었다.

한 재학생은 "이번 누출사고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사한 것은 순전히 운"이라고 말했다. KAIST는 이번 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감추려고 애쓰기보다는 안전관리 대응체계를 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교수와 학생 수준에 걸맞은, 국내 최고의 안전관리체계를 보여주는 학교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