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컨트롤 타워가 완성됐다. 출범 초기부터 재벌개혁을 주도했던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지난 2일 취임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김기식 원장은 지난 2일 취임식에서 금융 감독 당국으로서 영이 서야 할 금융시장에서조차 금감원 권위가 떨어졌다고 일갈했다. 금융 당국의 권위는 칼을 휘두르며 위엄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때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고도 밝혔다.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시절 ‘저격수’라 불리며 기업과 금융권을 긴장시켰던 그였기에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언론은 김 원장 내정 소식에 일제히 ‘저승사자’가 온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금융권에 대한 압박보다는 신뢰를 강조했다. 금감원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권한을 금감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만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금융 감독의 원칙이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원장은 금융 감독에 있어 조화와 균형을 강조했다.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간에,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보호 간에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감독기구의 위상을 온전히 유지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잔인한 4월이 될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에 책잡힐 일이 없는지 긴급하게 내부 점검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장하성, 김상조, 김기식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참여연대 3인방’이 진영을 갖춘 것에 대한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청와대 정책실을 중심으로 기업과 금융의 사실상 ‘검찰’ 역할을 하는 수장들의 생각과 여당의 ‘코드’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면서 재벌 개혁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재계는 김 원장의 인사는 큰 그림에서 보면 금융사 하나만 끼어있어도 금·산 복합 기업집단으로 간주하겠다는 방침으로 읽힌다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금융사를 가진 기업들 전체를 들여다보겠다고 달려들면 마치 정부가 국내 대기업을 장각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내놓는다. 미국의 구글이나 스웨덴의 발렌 베리 그룹처럼 지주회사들이 금·산 융합기업으로 가고 있는 추세와도 반대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금융당국은 당장 김 원장의 취임에 맞춰 지난해 금융지주사의 순이익이 11조원을 육박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지난달 16일부터 고강도 특별검사에 나섰던 하나은행 채용비리에 대해서도 추가비리 정황 32건이 밝혀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원장이 금감원의 영이 떨어졌다는 취임일성에 비추어볼 때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좇는 금융지주사’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는데 충분한 어시스트였다. 하나금유의 특검결과 발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비리는 단죄해야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한다. 그동안 방어적 행태만 보이던 금융기관이나 재벌기업들이 보다 개혁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정당한 기업 활동조차 공공성을 내세워 개혁을 압박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개혁은 속도가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제대로 된 방향과 불편부당한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