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본시장의 ‘공룡’ 국민연금이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을 떼어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주주권행사 강화를 통해 국민연금 자산 가치를 높이고 가입자의 이익을 증진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계는 기업의 경영권을 간섭할 우려가 있다면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기관투자자로서 했던 것처럼 기업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경영진을 위한 거수기 노릇에 충실해 달라는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국민연금이 오는 7월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투자기업에 대해 주요주주로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투자대상 기업의 가치를 높여 국민연금의 자산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목표다. 결국 이를 통해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꾀하겠다는 당연한 논리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621조원에 달한다. 이중 21.2%인 131조5000억원을 국내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270곳이 넘는다.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지분이 10%를 넘는 기업도 90곳에 육박한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의 실질적 주인이 국민연금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연금에는 ‘종이호랑이’, ‘주총 찬성 자판기’등의 불명예스런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투자기업의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서도 주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의 주총에서 횡령·배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재벌 사주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 등에 대해 반대하기보다는 기권하거나 중립의사를 밝히기 일쑤였다.
국민연금이 이제 기관투자자로서 가입자의 익을 지키기 위해 주주행사권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이 제출받은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스튜어드십 원칙의 세부사항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재계의 우려를 잠재우고자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때 혼선을 줄일 수 있게 주주활동 유형과 범위, 절차 및 기준, 법규 준수 절차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부지침을 마련하도록 주문했다.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담당조직, 의결권 행사 및 검토 절차, 의결권 행사내용·찬반사유 공시 등에 관한 내부 정책 및 세부지침을 만들어 공개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현행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주식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노사 가입자단체 추천 전문가 등으로 구성해 대표성과 독립성을 가진 ‘수탁자책임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상설기구화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재계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주주권행사 같은 데에는 신경 쓰지 말라는 투다. 지분 10%가 넘는 기관투자자의 의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1~2%도 채 안 돼는 재벌 사주 또는 오너의 경영권을 뒷받침 해주는 역할로 남아있으라는 주문이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로 경영권을 방어하고 지탱해오던 재벌에게 국민연금의 변화는 거북하다. 그냥 정권이나 정치권, 관치의 눈치를 적당히 보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논리를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 한다.
국민연금의 변화는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연금의 주주행사권 강화에 박수를 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