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26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개정협상 결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자동차에 관련해 많은 부분을 미국에 양보한 대신 농업분야를 지키고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를 양보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 25%, 알루미늄 10%라는 고율의 관세 부과 카드를 일찌감치 꺼내놓으며 공세에 나선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의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한국이 그나마 협상 국면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며 실리를 최대한 챙긴 선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조금만 사고를 확장하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카드를 일찌감치 오픈하면서 협상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간 미국의 전략에 휘둘렸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협상이라는 특성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백분 활용해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국면을 몰고 갔기 때문이다. 협상의 내용이나 결과를 떠나 협상의 전 과정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협상은 항상 이해 당사자가 존재하기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결론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거나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끌려간다면 협상의 의미는 없다. 가장 적은 것을 내주며 최대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협상이고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각종 사전 작업을 펼치고 전략을 세운다. 나아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각종 편법과 술수도 비일비재한 것이 국제사회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그들은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도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최소한의 것만 주면서 최대한을 받아낼 수 있는 ‘최고의 협상’을 위해 각국은 정보와 인맥, 심지어 비용까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협상에 따라 당장 국익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것은 물론 향후 국가 산업 발전을 좌우할 수도 있다. 현재 산업의 역량 분석은 물론 향후 발전 방향 등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망이 뒤따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는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부과가 20년간 연장됐다.
지금 우리 업체들이 생산하는 픽업이 없다는 단순한 출발점에서의 셈법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는 향후 한국에서 태동할 픽업관련 산업을 제약하거나 심한 경우 그 태동을 아예 원천봉쇄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되는 시기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경제의 대부분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칫 한 수를 잘못 두어도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와의 수출 1, 2위 국가의 전쟁이라 섣불리 어느 편을 들기도 애매하다. 더군다나 각 산업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유·불리를 따지기도 쉽지 않다.
이미 각종 지표들은 이들의 무역 전쟁으로 산업 전반에 타격이 적잖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칫 삐끗할 경우 우리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말 한마디로 ‘강동 6주’를 얻었던 서희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