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하루 빨리 헌법이 개정돼 국민 품에 안기길 바란다.”
지난 13일 자문특위로부터 개헌안을 보고 받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한다. 20일 문 대통령이 발의할 헌법 개정안의 윤곽이 드디어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개헌안 발의에 착수한 청와대가 정부 개헌안에 대한 첫 대국민 설명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해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국민들의 힘을 빌려 개헌을 밀어붙이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을 표를 가진 국민들의 힘으로 움직이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게다가 ‘표의 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시의적절한 포석으로 보인다.
발표에 따르면 현행 헌법에 포함된 4·19혁명과 함께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촛불 시민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측면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개헌안과 관련해 20일 헌법 전문과 기본권, 21일에는 지방분권과 국민주권, 22일에는 정부 형태를 비롯한 헌법기관의 권한에 관한 사항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26일 발의를 전제로 ‘개헌시계’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6·13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촉박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19일 개헌 관련 언론 브리핑에 나선 진성준 정부기획비서관은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와 기간을 준수하면서 국회가 개헌에 합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며 공을 정치권으로 넘겼다.
여야가 합의해 개헌안을 마련한다면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접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입법부인 정치권이 스스로 나서서 헌법을 고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개헌을 관철시키고 말겠다는 으름장(?)을 놓은 모양새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한국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6월 개헌안 합의 카드가 제시되고 있지만 이는 개헌은 떼어내고 지방선거를 치르려는 전략적 제안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투표용지 인쇄 등 절차와 현실적 준비를 위해서는 늦어도 5월4일까지는 여야가 개헌안에 합의해야 동시투표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개헌안에 포함된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국민소환제와 국민법률안발의제 도입이다. 권력의 감시자로서 자신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한편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입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개헌안도 국회의 문턱을 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개헌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하기 때문이다. 개헌 논란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명분을 얻겠지만 개헌은 완전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고도의 정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모두가 국민과 나라의 미래만을 바라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