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낙마로 체면을 구긴 금융당국이 다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칼날을 들었다. 명분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이지만 다분히 감정이 섞인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도 넘은 조사가 권위인지 횡포인지 모르겠다는 항변도 들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5일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배제된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강화되고 보수 총액이 일정금액 이상인 금융사 임원의 보수 공시는 의무화된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최근 금융지주회사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금융사 CEO 선출 과정에서 현직 CEO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개입되고 사외이사가 경영진에 종속되는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개선방안을 내놓았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우선 사외이사와 감사 후보추천위원회에 CEO의 참여를 금지하기로 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도 확대된다. 기존 최다출자자 1인에서 최대주주 전체와 그 밖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대주주까지로 늘어난다. 또 보수총액이 5억원 이상이거나 성과급이 2억원 이상인 임직원은 보수를 보수체계연차보고서를 통해 공시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지배구조 개선으로 금융권이 공공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경영원칙을 확립한다면 국민의 오해를 불식하고 금융 산업의 새로운 혁신을 위한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의 과도한 조사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사실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에 대해 수시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김정태 회장 등 하나금융 최고경영진을 겨냥한 칼날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3일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대학동기의 아들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여 사퇴하면서 금감원은 체면을 구겼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하나은행 측에서 최 원장의 채용비리 의혹을 흘렸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결국 피감기관이 감독기관의 수장을 불명예로 옷을 벗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감정적 대응이 뒤따랐다.
금감원은 즉각적으로 하나은행과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고강도 검사에 돌입했다.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을 상대로 검사범위와 시간, 인력을 정하지 않는 ‘무제한 검사’에 착수했다. 검사단은 다양한 국·실의 10~15년차 베테랑 검사인력 16명과 단장, 감사를 포함해 2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례적으로 금감원은 ‘하나은행 특별검사단’ 파견발령까지 냈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은 15일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은행 채용청탁 의혹으로 물러난 데 대해 ‘임명 시점에 예고된 참사였다’고 지적하면서도 ‘최 전 원장의 낙마를 초래한 채용 특혜 의혹은 하나금융 내부에서 흘러나왔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을 겨냥했다.
금융회사가 공공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통제하고 감사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특정인을 겨냥하고 지속적으로 고강도 검사를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의 감정싸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