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192개가 지정된 산업단지는 216만 근로자가 일상을 보내는 삶의 터전이다. 근로자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수백만의 인구가 산업단지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산업단지는 생활터전으로부터 격리된 대규모 생산기지로서 관리돼 왔고, 근로자의 정주환경에 대한 관심은 산업단지 지정·개발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산업단지에 종사하는 근로자 다수는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거나 원거리 통근을 감수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몇 년 사이 산업단지 정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일단은 중앙정부가 적극적이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는 현 정부 정책구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의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산업단지라는 공간 속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
산업단지공단의 한 조사는 산업단지 소재 중소기업의 과반이 청년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이나 실업계 고등학생이 산업단지 취직을 꺼리는 주된 요인의 하나로 산업단지 주변 생활여건의 열악함이 조사됐다고 한다. 이처럼 산업단지의 정주여건이 열악한 탓에 중소기업의 고용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정부 일자리 대책의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단지 정주환경에 대한 관심은 지방정부로도 이어진다. 지방정부의 주된 고민은 종사자들의 원거리 통근으로 인한 소득유출에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수도권과 인접한 충남 산업단지 다수는 지역 바깥에서 통근하는 근로자의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산단 주변에 거주하는 종사자의 비중도 매우 높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산업단지 주변에 적절한 정주환경이 갖춰지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원인이다. 외부인구 유치는 지자체가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중요한 목적의 하나다. 그러나 최근의 통계들은 정주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산업단지 개발은 지역경제에 큰 효과를 미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의 산업단지 정주환경 개선사업들은 근로자들의 생활패턴을 변화시키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체육시설을 공급하거나 통근버스 운영을 지원한 사업은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근로자 가구의 이주를 위해서는 결국 보육·교육시설을 동반한 종합적인 정주여건이 필요하지만 규모가 작은 대다수 산업단지에서 그 같은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웠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열악한 형편의 산업단지들이 밀집한 지역에 정주환경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낮은 사업성과 입주수요의 불확실성 탓에 추진이 정체돼 있는 상태다.
산업단지 정주환경 개선의 추진을 위해서는 배후도시의 관계성을 고려한 공간전략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산업단지는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있고 30분 이내 통근권에 배후도시가 위치한다. 따라서 산업단지마다 모든 정주기능을 공급하기보다는 종사자에게 필수적인 주거·편의·의료시설을 중심으로 공급하고, 고차 정주기능을 위해서는 배후도시와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이를 위해 권역별 거점도시를 지정하고 배후 소규모 산업단지들의 정주환경 개선을 위한 공간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통근권 내 배후도시가 부재한 일부 산단의 경우는 주거·지원기능을 거점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이격개발해 집단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