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가 터져 나온 지 한 달 보름 남짓 시간이 흘렀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하는 서지현 검사가 법무부 간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불을 지폈다. 그의 폭로로 촉발된 이른바 ‘한국판 미투’는 법조계를 시작으로 연예계를 넘어 대학가, 정치권을 강타하며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고위 검사는 물론 명망 높은 대학 교수, 대중의 사랑을 받던 연예인과 문단을 대표하던 문인, 한국 영화와 연극의 대부로 불리던 제작자들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미투 폭로 앞에 그들의 추악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야말로 전방위 폭로전이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아랫사람이나 약자를 짓밟았던 그들의 행동에 국민은 비난을 넘어 분노를 쏟아냈다. 피해자의 직접적인 고발로 결국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피해자들의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을 위로하며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위드유(With you·당신을 지지하며 함께 한다)’ 동참자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미투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우리 사회의 성의식이 아직 여물지 않았고 봉건적인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뿌리 깊게 막혀있는 점 등 여러 여건상 ‘권력형 성폭력’이 만연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다음 미투의 대상이 누구일지 혹자에게는 관심으로, 혹자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미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세간의 말이 왠지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다음 폭로 대상은 누구다라는 식의, 혹은 폭로가 터져 나온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피해자가 폭로를 결심했다는 식의 ‘찌라시’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 주말 날아든 한 배우의 자살 소식은 미투 운동에 새로운 변곡점이 될 듯하다. 제자들의 잇단 성추행 폭로로 경찰 수사를 앞두고 있던 조민기씨가 A4용지 6장에 달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잘, 잘못을 떠나 한 배우의 죽음이 미투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9일 오후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미투를 자제해달라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미투 운동은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며 “조씨의 죽음은 미투로 인한 ‘사회적 살인’이다. 이를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씨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이들은 피해 사실을 폭로한 어린 학생들일 것이다. 성추행의 상처를 혼자 삭이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폭로를 했지만 그 결과가 한 사람의 죽음이라면 어린 학생들이 이겨내기에는 쉽지 않은 고통일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나 않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도 상처 받지 않으며 사회를 정화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미투 운동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