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 한미FTA 개정 지렛대 되나
관세 폭탄, 한미FTA 개정 지렛대 되나
  • 이가영 기자
  • 승인 2018.03.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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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카드 활용 땐 제약·지재권·농업 추가 피해 우려
NAFTA 협상국 관세보류…정부 협상력 부재 비판도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진행 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이 관세폭탄의 지렛대로 활용되는 경우 지재권, 농업 등 분야에 추가적인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하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대상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는 관세 적용 보류를 결정했다. 앞서 트럼트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오는 2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 조치 서명식에 앞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나프타 재협상을 거론하며 “만약 우리가 합의에 도달한다면 두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다른 국가들이 대미 수출이 미국에 가하는 위협을 해소한다면 면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소명'을 거치는 경우 면제국을 추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 미국은 관세 명령에서 협상 데드라인을 명시하지 않았다. '관세폭탄'을 FTA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드러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과 관련해 관세폭탄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 만큼 한국에도 비슷한 작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지난달 1일 한미FTA 2차 개정협상을 마무리 지은 뒤 3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3차 협상은 이르면 이달 말 개최될 예정이다. 

미국은 기존에 한국과 FTA 개정협상에서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공세를 펼쳐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철강 관세를 연계할 경우 더욱 다양한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며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제약, 지식재산권, 농업 등이 트럼프발 통상압박의 다음 표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미국의 주요 경제단체와 산업계는 최근 한미FTA 개정협상을 통해 한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상공회의소는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부과한 약 1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예로 들며 한국에 지재권의 상업화를 방해하는 규제·행정 장벽이 존재함을 지적했다. 미 상의는 퀄컴이 한국 외 국가에서 취득한 특허권까지 공정위 결정으로 규제하려 한다며 이는 국제 규범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전미제조업협회(NAM)도 미국이 지재권 보호를 위해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면서 NAFTA와 한미FTA 개정협상을 거론했다. NAM은 미국에 위조 상품을 유통하는 주요 국가로 중국, 인도, 한국, 싱가포르 등을 지목했다.

미국 제약협회(PhRMA)는 캐나다, 한국, 말레이시아 3개국을 '우선순위(priority) 국가'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PhRMA는 특히 한국의 약가 정책이 혁신 제약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한국 제약업계에 유리하다면서 "한국의 가격 결정은 여러 단계에서 한미FTA 의무를 어기고 미국 혁신가의 권리를 짓밟는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레드라인'이라 선을 그은 농업 시장에 대해서도 미국이 추가 개방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도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등 기존에 제기했던 이슈 외에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쇠고기 수입 분야를 거론하며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다보니 서로의 뇌관을 건들이는 '치킨게임'이 지속되는 경우 한미FTA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개인 교섭력에 과하게 의존한 탓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비판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제 한미FTA 개정협상에서도 이번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와 관련해서 추가로 협의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232조 조치와 관련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별도 협상을 해야 하는데 한미FTA 개정협상 시기와 상대가 겹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미국이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요구와 관련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어 호주도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대상에서 면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