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發) 보호무역 조치에 중국과 유럽연합(EU)이 반발하면서 전 세계에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표방하는 한국으로선 무역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균형감을 잃지 말고 외교, 통상 분야에 협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집권 2년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들어 보호무역 기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수입산 철강에 25%, 수입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EU는 즉각 반발했다. 중국은 미국이 WTO 규정을 무시하고 중국기업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면서 대두, 수수 등 미국산 농산물에 보복관세를 매기는 방안 검토에 나섰다.
EU는 미국산 철강과 농산물은 물론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 데이비슨, 위스키 생산업체 버번, 청바지 업체 리바이스 등 미국의 상징적인 브랜드에 보복관세를 검토하겠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트럼프는 EU가 높은 관세장벽을 더 높이려 한다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EU의 자동차에 대해 세금을 적용하겠다고 맞받아쳤다.
한국은 무역전쟁 위기를 마냥 팔짱 끼고 볼 수만은 없는 처지다. 당장 철강·알루미늄 등 관련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봉착했고, 관련업계가 아니더라도 타격은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특성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무역전쟁 조짐이 올해 성장률을 깎아 먹는 요인으로 작용하진 않는다는 분석이다. 아직은 입씨름의 과정이어서 무역 전쟁이 관세로 현실화되려면 법령 개정 작업 등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율의 관세 적용 대상이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은 걱정거리다. 지금은 미국의 보호무역조치가 철강, 알루미늄, 세탁기, 태양광 등 특정 업계와 관련돼 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주력 품목으로 번 질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대응책 모색에 분주하다. 기재부와 산업부는 5일 오후 김동연 부총리 주재로 긴급 통상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미국 보호무역조치와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 중국, EU의 무역 갈등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회의에선 지나 3일 아웃 리치를 마치고 돌아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6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미 의회와 철강·자동차 등 업계 주요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조치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이번 주에 ‘무역확장법 232’에 따른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최종 관세 부과 결정이 내려지는 만큼 이를 막는 데도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EU 등 ‘빅3’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된 한국이 내놓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사실상 한국이 택할 수 있는 뾰족한 묘책은 없어 보인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보호무역주의 양상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통상정책의 재점검과 강대국 사이에서의 균형 잡힌 외교, 끝까지 미국 측을 설득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에 대해선 현 조치들을 바꿀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압박을 가할 것을 요구했다. 정면대응을 하는 것보다는 미국 의회나 정·관계를 설득하는 등 다양한 채널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