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미르·K스포츠재단 대기업 출연 강요, 삼성 뇌물수수, 문화계 지원 배제자 명단 작성, 공무상 비밀누설 등 모두 18가지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은 준엄한 책임을 물었고 이제 재판부의 판단만을 남겨놓았다.
구속 상태였던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4월17일 재판에 넘겨지면서 그해 5월2일부터 시작된 길고 지루했던 재판은 317일 동안 모두 100차례나 열리며 133명을 증인대에 세웠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재판을 통해 그간 세간에 떠돌았던 갖가지 소문들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사건의 진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실과 싸워야 하는 언론의 사명을 넘어 같은 이유로 탄핵되는 비운의 대통령이 다시는 없도록 ‘역사의 교훈’을 도출해내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2018년 2월27일 열린 마지막 결심 공판장 어디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공판 시작 전 “서울구치소로부터 박근혜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거부하고 있고, 인치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취지의 보고서가 도착했다”며 “오늘도 피고인 불출석 상태에서 공판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 연장을 결정한 재판부에 반발해 지난해 10월부터 법정 출석을 거부해왔다. 재판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출석 거부의 사유였다. 박 전 대통령의 ‘초법적 특권의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말 밝혀야할 진실에는 침묵하고 개인적 불편함은 참지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재판부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체념 섞인 말이 공공연히 언론을 장식할 정도다. 하지만 국민 누구도 공공연히 재판부의 공정성을 거론하며 재판을 아예 보이콧하지는 않는다.
특검에 출석하며 검찰의 강압수사를 이유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법치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그의 ‘40년 지기’ 최순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법 위에 군림하며 국기를 농단하다가 필요할 때는 국가를 들먹이는 ‘초법적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런 공통점 때문에 두 사람은 40년 지기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다른 사람을 40년씩이나 곁에 두고 친하게 지낸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한 사람에게 그것도 40년을 속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고 안쓰러움보다는 황당함이 앞서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재판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국론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극한의 분열을 계속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받은 상처와 치욕도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이번 재판이 국론분열의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발전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