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최순실 게이트’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돼 전격 구속되면서 스스로 대표직 사임의사를 밝혔고 일본롯데홀딩스는 21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신동빈 대표이사의 사임안을 상정, 가결했다. 대신 롯데홀딩스 이사직은 유지키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한국보다 경영진의 비리에 대해 엄격한 일본 사회의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에서는 경영진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 책임을 지고 이사직에서 사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그의 한·일 롯데 통합 경영을 통한 ‘뉴롯데’ 구상도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신 회장의 부재로 한국 롯데에 대한 일본 롯데 경영진의 간섭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신 회장의 부재로 다시 ‘형제의 난’이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실제로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표로 있는 일본 광윤사는 신 회장의 법정 구속 당시 긴급 입장자료를 내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광윤사는 당시 “롯데의 총수가 횡령 배임 뇌물 등의 범죄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는 것은 롯데그룹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이며 극도로 우려되는 사태”라고 밝혔다.
22일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롯데의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 일본 홈페이지에 ‘롯데홀딩스의 신동빈 씨의 대표이사 퇴임에 대해’라는 글을 올리고 신 회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돼 있는 상황에서도 롯데홀딩스의 이사 부회장으로 머물고 있다”며 “롯데홀딩스 이사 자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사의 지위에 머무는 옥중 경영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위 ‘신동빈 흔들기’가 본격화 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북핵 위기와 미국의 각종 무역규제 등 우리 경제의 대외적 여건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굴지의 대기업이 정치적 이유로 흔들리고 있다.
일단 한국롯데는 황각규 부회장을, 일본은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며 분위기를 추스르고 있지만 총수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신동빈 회장이 중국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경북 상주의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놓으면서 입었던 각종 피해를 고려해서라도 그를 석방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국익을 위해 희생한 점이 재판에서도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업을 주로 하는 롯데의 특성상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을 들면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선처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신동빈 회장의 재판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일 수 없는 이유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경제에, 그리고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치적 역학에서 기업인을 단죄하는 관행도 우리사회가 청산해야할 적폐 중 하나다. 기업이 경영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조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