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19일이었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 들어있는 절기인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니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을 맞게 되는 시기를 뜻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다. 문제는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미국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는 북한 간의 대화를 어떻게 견인해내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제 모든 시선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제 직접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 하느냐에 쏠려있다. 하지만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한한 지 열흘이 다 되도록 한미정상간 전화통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북정책 기조를 놓고 ‘긴밀한 공조’를 누차 강조해 온 두 정상이 직접통화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북한의 방북 초정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 속에서 아직은 짧은 시간이지만 한미 두 정상의 전화통화 부재는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방북요청 때 ‘여건 조성’을 전제로 즉답을 미뤘었다. 이는 북미간의 대화를 견인해 한미공조 틀 안에서 남북문제를 풀겠다는 의미전달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이번 주말 미국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의 방한에 앞서 금주 중으로 양국 정상간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정상의 통화시점에 대해, 서둘지 않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분위기에 휩싸여 서두르기 보다는 정밀한 전략 하에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북미대화를 ‘여건 조성’의 핵심으로 삼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 간의 통화는 첫 고비로 볼 수 있다. 문재인·트럼프 두 대통령의 통화가 언제 이뤄졌느냐 보다는 통화이후 그 결과를 공개하면서 내놓을 ‘메시지’를 어떻게 조율해내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의 ‘핫라인’을 중심으로 정상 간의 통화에 앞선 사전정지 작업이 한창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 측으로서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상황 관리, 그리고 북핵 해결의 외교적 수단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에 전향적으로 응할 것을 설득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하는 국제사회의 여론 흐름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관련 부처에서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북한과 미국 간의 의미 있는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17일 문 대통령의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란 표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남북대화가 북미대화에 선행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미국과 북한에 확실하게 전달했다는 평이다. 북미대화가 남북 정상회담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 이를 확인해준다.
지난 몇 해 동안 경색된 남북관계는 국가 안보는 물론 정치, 경제적으로 많은 제약을 가져왔다. 이번 기회가 차가운 대동강 물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효과적인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