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설날을 맞아 어김없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설 연휴 기간인 14일부터 18일까지 총 3274만명, 하루 평균 655만명이 이동하고 이 중 80%는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어 강원도 구간에서는 명절정체특수가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귀성길이 고행길이 된다고 할지라도 고향으로 향하는 모두의 마음만은 넉넉하고 풍성함을 품고 여유롭게 다녀오길 바란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의 풍속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지만 시대가 변하다 보니 명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 모양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간편 제수음식의 약진이다. 한 대형마트에서 출시중인 간편 제수음식의 경우 전년대비 15~20%의 매출증대를 기대하고 있으며, 출시 3년 만에 매출이 12배가 늘었다고 한다. 각종 전은 물론 차례상을 차릴 모든 구성이 갖춰졌다고 하니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손길이 가는 것이 당연하며, 이제는 이를 두고 정성이 부족하다는 둥 폄훼할 일도 아닌 듯하다.
또 하나 명절에 해외여행객이 증가하는 것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세태다. 설 연휴기간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과 저가항공사들의 사전 해외 예매율은 80~90%에 달했으며,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대부분 만석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설 연휴 하루 평균 9만440명의 승객수를 예측하고 있어 50만명 정도는 이번 설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런 현상은 인구의 고령화와 맞벌이, 소가족이 늘어나면서 사회구성이 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명절에 대한 사회 인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난의 고속도로와 명절음식 만들기에서 벗어나 연휴를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자하는 욕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회현상이 반영된 결과다.
더군다나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트렌드가 확산되고 ‘욜로’(You Only Live Once)같은 삶의 가치기준의 이동도 예전과 다른 명절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한몫 하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 관습으로 명절을 보내온 세대에서는 이런 일들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 유교적 관점에서야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명절의 모습인데 간편식으로 차례상을 차리고 해외여행을 떠난다니 이해도 가지 않고 섭섭할 따름이다.
반면 세시풍속이 조선시대를 거치며 남성중심으로 굳어지다 보니 명절 때 마다 며느리 희생이 당연시 돼 고부갈등이 드러나고 이는 다시 부부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난의 고향길과 갈등으로 치닫는 명절대신 간편식으로 가볍게 지내고, 가족단위로 여행을 떠나 휴식을 즐기는 것이 명절을 매우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시대가 변했으니 명절의 모습이 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명절을 전통적으로 보내든지 새로운 방식으로 보내든지 서운한 누군가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일과 가족의 양립과 한번 뿐인 인생을 자신과 가족 삶의 가치에 무게중심을 둘 때, 그 가족에 부모님도 포함시켜 보길 바란다. 기왕 가는 해외여행에 괜한 핑계 대지 말고 부모와 함께 하면 한 해 동안 부모의 자랑스러운 딸, 아들, 며느리, 사위가 돼 한번 사는 인생에 꽤나 보람된 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올해는 모두가 가족갈등 없는 즐거운 설날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보자.
/고재태 스마트미디어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