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권력 개념은 매우 구체적이다.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확인하고 시장과 유사한 경쟁체계 속에서 권력을 분배한다. 지나친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충돌하는 상황을 우려해 특정 가치를 선정하고, 이를 개인에게 내면화함으로써 통합을 이룬다. 다원주의 권력의 전형적인 작동원리이다. 이보다 효율 지향적인 권력은 개인이 아닌 소수 엘리트 간 경쟁을 통해 움직인다. 엘리트는 배제와 통제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권력을 행사한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 갈등도 조직 협상이나 법적 조치로 해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 가장 견고한 안정성을 보여 주는 것은 헤게모니 권력이다. 이는 대중의 사고와 의식을 장악한 바탕 위에 구축되므로 움직임이 지극히 비가시적이다. 당연히 헤게모니 권력과 함께 살아가는 대중은 사회 갈등의 근본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기존 질서를 향해 자발적인 동의를 보낸다. 어느 세력이든지 정권을 잡으면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장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과 강제는 동의 유발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고서야 꺼내드는 비상수단이다.
이처럼 서구 권력관은 주로 행위자의 의지 실현과 관찰 가능한 갈등, 이해관계 해결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모두 민주주의를 지향하되 그 해석은 각기 다르다. 다원주의 관점이 정치 체제의 민주성을 옹호하는 쪽에 치우친다면, 엘리트적 접근은 좀 더 효율성을 강조하고, 헤게모니적 해석은 대체로 이를 비판하는 데 치중한다.
하지만 우리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권력 유형 사이에는 별로 엄청스러운 차이가 없다. 더러는 그저 협소한 세계관에 얽매이다 보니 새로운 권력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예를 들어 철저하게 자유로운 경지를 개척하려 했던 옛날 옛적 노자 정치관의 상상력에 견주어 보자면 더욱 그렇다.
노자에 등장하는 권력은 인위나 유위를 벗어난 무위의 권력을 강조한다. 인위란 일부러 궁리하고 계산해 행하는 것이어서 유심하다. 서구인들이 확인한 세 가지 유형과 다른 차원의 얘기다. 무위타입의 통치자는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아서 백성을 허식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이런 점에서 무위에는 서구인들이 거론하는 구체적인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작과 강압에 의한 통치를 강력히 배척하면서 백성을 자연의 이법에 따라 행동하도록 이끄는 부존재의 권력이 있을 뿐이다.
무위 세상의 백성들은 만사를 흥겨워하고 권력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태평성세를 즐긴다. 다스리는 무리가 자(慈)와 검(儉) 그리고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려는 자세를 꿋꿋하게 지킬 때 그런 세상이 온다. 자는 자애, 곧 백성에 대한 사랑이다. 백성을 아끼고 생명을 중히 여기면, 그들은 통치자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다. 검은 검약이다. 과다한 세금 징수와 낭비를 멀리하면 널리 은덕을 펼 수 있다. 또 백성한테 간섭하거나 지도하려 들지 않아도 결국은 앞서게 된다.
물론 무위의 정치와 무위적 권력이 요즘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일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백성으로 하여금 본성에 따라 생활하도록 함으로써 통치자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정치권력은 오늘날 여전히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엄동설한에 온통 인위와 유위만 난무하니 문득 무위가 떠올랐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람직한 권력은 백성 마음을 저절로 편하게 하는 것이란 사실을 우리 위정자들은 상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