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면 민족 최대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된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친지들과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울 정겨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도 서민들의 현실이다. 이맘때쯤이 1년 중 씀씀이가 가장 커지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어렵게 고향 가는 차편을 구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양손에 가득 들고 고향을 찾는다.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막히더라도 ‘우리민족의 대이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향에서 얻는 안락함, 부모 형제들과 나누는 사랑, 친지들과 주고받는 정….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이다.
또 고향에서 손아랫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기꺼이 지갑을 연다. 마음을 담은 세뱃돈과 덕담은 이미 몇 푼의 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진정으로 행복을 비는 마음이 담겨 있기에 그것은 이미 숫자로 환산되는 경제 개념을 초월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오고가는 세뱃돈은 단순한 화폐의 가치를 넘어 인심이 담긴 우리민족의 곳간인 셈이다.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차례상도 차려야 한다. 차례상의 각별한 의미 때문에 최고의 물품들로 상을 차리는 것은 어찌 보면 후손으로서는 당연한 도리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씀씀이가 커지는 설 명절을 앞두고 무, 배추, 대파 등 채소류의 가격이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니 서민 가계의 주름살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설 명절 수요가 많은 한우 등 육류의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며칠 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설 차례상 구입비용 조사에 따르면 올해는 전통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할 경우 약 24만9421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전국 19개 지역 45개전통시장과 대형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는 대형유통업체에서 차례용품을 구입할 경우 이 보다 많은 35만4254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각각 0.5%, 4.2%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파가 기승을 부리면서 각종 채소류들이 생육부진을 겪고 있는데다 수확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나마 수확한 채소마저도 갑작스런 폭설에 물류대란을 겪으며 산지와 소비자의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니 정상적인 가격 상승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기가 세밑이라는 점이다. 수요를 미리 예측해 최대한 공급을 맞춤으로써 가격을 안정시키고 적절한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어쩌면 정부가 전면전을 펴다시피 하며 잡으려는 집값보다 각종 먹거리 등 서민물가가 더 우선시 돼야 한다. 의식주라는 말처럼 먹고사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외식물가 등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심상찮은 게 사실이다.
명절을 쇠면서 지출이 많아진 가계는 명절 이후에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우리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민 가계발(發) 경제 적신호가 켜질 수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이 주머니 사정에 맞게 즐겁고 넉넉한 설날을 보내는 것이 곧 우리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