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진 강추위와 건조한 날씨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들려오는 안타까운 사고소식들은 매서운 삭풍보다 더 시리게 가슴 한 편을 훑는다.
얼마 전 밀양의 한 요양병원에서 화재로 인해 39명이 숨지는 등 190여명의 사상자가 나는 사고가 났다.
사고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경찰은 불법 증·개축 건축물과 불법 가림막 등이 사고 피해를 키우는 주된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불법 건축물을 지시했거나,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사람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한편 평소 소방안전관리나 시설관리에 소홀했던 점은 없었는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또 요양병원처럼 특성상 환자들의 거동이 불편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많은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시설이라면 그 예방은 물론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피에 대한 방안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비참한 대형 참사를 놓고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이를 정쟁화 하거나 잘잘못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씁쓸할 따름이다.
야당에서는 “예방 행정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 정권이 사고만 나면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하다”거나 “문재인 정부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핵심 국정 목표로 삼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현 정권 비판에 열을 올리는 와중에 여당에선 “직전 이곳(밀양) 행정 최고책임자가 누구였냐”며 야당의 책임공방에 가볍기 그지없는 멘트를 날리며 맞장구 쳐 주셨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재미없는 쇼를 보고 살아야 하나?
삼국유사에는 통일신라 설화인 ‘만파식적(萬波息笛)’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설화에 따르면 나라를 걱정하던 문무왕이 사후에 용이 돼 아들 신문왕에게 둘로 갈라진 신비한 대나무를 내리게 되고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든 것이 ‘만파식적’이다.
‘만파식적’을 불면 전쟁에 이기고, 흉년과 전염병이 사라지며, 날씨를 다스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요술피리였다. 사실 이 설화는 둘로 갈라져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대나무를 하나로 엮어 만든 피리를 불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다는 점에서 당시 삼국통일 이후 백제, 고구려 유민과 분열된 국론을 한데 모으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 했던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앞으로 화재사고에 취약한 시설의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태업을 일삼아온 정치권에서부터 자신들의 할 일을 다 해야 할 것이며, 담당 부처의 책임자들과 실무 공무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꼼꼼한 관리감독과 대안마련을 해야 한다.
요양병원, 노인전문병원, 전문요양시설, 신체장애인 요양시설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고 신체적 제약이 있는 사람을 수용하는 모든 시설에 대해 각기 다른 기준과 제도에 대한 재점검을 실시하고 관련법을 정비할 때가 된 것이다.
정부와 여·야, 그리고 국민이 한 뜻을 모아야 국민안전이 실현되고, 그래야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있게 된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사고의 근본원인을 살피고 대안을 고민하면 분명 앞으로 허망한 참사를 막고 안전한 국가와 태평성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만파식적’은 누가 불어주는 것이 아니라 각각 제 손에 하나씩 들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