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비리 종합 선물세트’였다. 공공기관·지방공공기관·기타 공직유관단체할 것 없이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채용비리를 보면서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든다. 공공부문에 독버섯처럼 만연한 채용 관련 각종 비리를 이참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심증과 설로만 무성하던 채용 관련 비리가 정부의 조사로 만천하에 드러난 만큼 관련자들은 엄단하고 다시는 그러한 채용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제도적 보완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또한 수시로 비리를 조사하는 관리·감독도 필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전국 1190개 기관·단체의 지난 5년 동안의 채용 과정을 전수 조사했다. 946개 기관·단체에서 4788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10곳 가운데 8곳에서 비리가 저질러 진 것이다.
비리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수출입은행은 특정인을 선발하기 위해 당초 세워두었던 채용 계획보다 많은 채용 후보자를 뽑았고 서울대병원도 특정인을 뽑기 위해 서류 전형 합격자수를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병원은 면접전형에서 그 특정인에게 면접위원 전원이 점수를 몰아줘 최종합격하는 비리를 저질렀다.
비리 백태의 정점은 한국건강개발원과 항공안전기술원이다. 이곳에서는 면접위원도 아닌 고위 인사가 불쑥 면접장에 들어와 특정인에게 유리한 질문을 던지는 ‘막가파식 채용비리’가 저질러졌다니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정부는 부정청탁·지시나 서류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109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고 비리 개연성이 있는 225건에 대해서는 징계와 문책을 요구했다. 또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된 8개 현직 공공기관장은 해임하고 임직원 226명은 즉시 업무에서 배제했다. 수사 과정에서 기소될 경우 퇴출시킨다는 방침이다.
또 현재 파악된 부정합격자 50명에 대해서는 당사자나 관련자가 기소될 경우 즉시 퇴출시킨다는 원칙도 천명했다.
채용비리는 권력과 재력을 앞세워 타인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범죄 행위다. 반칙으로 기회를 빼앗긴 사람은 물론 온 국민에게 불신을 조장한다. 결국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경쟁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공동체의 선(善)을 훼손하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등 소위 ‘신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몇 년씩 노량진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는 청년들을 우리는 도대체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는가.
국가가 나서서 짓밟힌 청년들의 꿈에 물을 주고 가꿔서 다시 싹을 틔워야 한다. 정부는 채용비리 근절을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채용비리 통합신고센터를 상설 운영하고 채용비리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임직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신고절차 간소화와 철저한 비밀 보장 등이 뒤따라야 신고 활성화를 통한 상시 감독·신고 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면접위원에 외부 전문가의 비율을 대폭 확대하고 채용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국민적 공분을 잠시 잠재우기 위한 땜질식 처방이 아닌 채용비리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얼마 전 시중은행 실태조사에서도 채용비리도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다.
민·관에 만연한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