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5명의 후보는 모두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하기로 국민들에게 약속을 한 바 있다.
현행 헌법은 지난 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써, 30년이 지난 지금 급속하게 변해버린 작금의 시대상황과 새롭게 부각된 가치들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점을 모든 국민들이 인식했고, 5명의 대통령 후보들 역시 공통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6월 개헌을 반대하고 있다. 문제는 반대의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는데 있다. 지방선거 투표용지가 7장이나 돼 국민들이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견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궁색하다.
그 이면에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이 블랙홀이 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켜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선거전략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밑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어려울수록 약속을 지킴으로써 국민들의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시기가 아니라 내용이다.
지난해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헌법 전문 내용인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으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완수’ 대신 ‘연대의 원리를 사회생활에서 실천’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가치와 틀을 혼동한 졸작이다. 원래 자유란 인류가 역사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한 가치이자 이념이다. 헤겔(Hegel)은 역사철학에서 절대정신이라 불리는 이성(Vernunft)이 역사라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창조한 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라 할 정도였다.
반면에 평등은 제도를 통해 구현되는 결과물이다. 민주주의가 평등을 가장 잘 구현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시민사회 성립의 근본원리인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대체할 ‘연대의 원리’ 운운은 매우 지엽적일뿐 아니라 철학적 빈곤의 모습만 보여 진다.
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 거부 허용’의 내용도 담겨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여년 간 사형이 집행이 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로 분류되기 때문에 논의는 해 볼만 하더라도, ‘양심적 병역 거부 허용’은 문제가 다르다. 우선 단어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 차라리 ‘종교적 이유에 의한 병역 거부’가 옳은 표현이고, 남북이 대치된 안보환경을 고려할 때 어떠한 이유로도 병역거부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특히 국민의 4대의무인 병역의 의무와 상충이 된다.
다만 법원의 권유대로 대체복무를 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이는 법률로 정해야지 헌법에 명기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만일 이 경우라면 군필자 가산점제를 헌법에 명기해야 형평성에 맞고, 어쩌면 동성애자 결혼 허용을 헌법에 명기하라는 민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견해들은 자문위의 개인적 의견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헌법은 국가의 기본 정신과 가치를 담되 시대정신에 맞게 하자는 것이지 개별 사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과 국회는 이 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특히 야당은 국민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시기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보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2월 임시국회가 개회됐다. 6월 지방선거까지는 매우 짧은 시간이 남았지만 밤을 세워서라도 깊은 논의를 통해 올바른 국가를 바로 세울 헌법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