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38명, 부상자 151명의 대형 비극으로 이어진 경남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참사는 대한민국의 안전의식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질병을 치료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요양하는 병원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빼앗기는 허점이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이번 밀양화재는 29명의 인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의 복합상가 화재가 발생한지 한 달여 만에 반복된 참극이고, 서울 종로5가의 숙박업소 방화로 6명이 유명을 달리한 사고가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국민이 느끼는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최근 화마로 고귀한 생명을 잃을 때마다 갖는 생각은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번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충북 제전화재와 유형이 거의 유사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제천 화재는 불이 났을 때 피할 수 있는 비상구가 막혀있었고, 스프링클러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진 인재(人災)였다. 정부는 국민에게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인 환자들이 많아 인명피해가 더 컸다. 병원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정교한 대응책이 마련돼 있어야 했지만 그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간호사가 대피하라고 소리만 질렀다거나 비상벨이 울렸지만 간병인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생존자 증언만 나올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전에 방재 설비 점검만 제대로 했더라도 막을 수 있던 인재라는 점도 제천화재와 비슷하다. 방재 칸막이조차 찾을 수 없었고 병원 침구나 시설이 불이 쉽게 번질 수 있는 소재와 구조여서 연기와 유독가스가 삽시간에 퍼졌다. 결과야 다르지 않았겠지만 제천 상가건물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밀양 세종병원엔 아예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정부의 대처도 별 다르지 않아 식상하기까지 하다. 청와대에선 부랴부랴 회의가 열렸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주요 정당 대표들이 앞을 다퉈 현장으로 달려갔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된 수습본부가 만들어진 것과 관계당국이 합동으로 원인규명을 위해 동원된 점도 완전 복사판이다.
이쯤 되니 ‘국민 안전’을 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로 삼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도 이제 공허하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4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같았다. 당시 정부는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에서 소방과 방재부문을 떼어내 별도부처인 ‘국민안전처’를 만들고 일제 점검을 하고, 관련 인력을 늘리며 야단법석을 떨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처는 통합됐고 이름도 다시 ‘행정안전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국민안전’은 담보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뀌어야 할 알맹이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부처 명칭만 바꾼다고 국민안전이 해결되진 않는다고 지적한다.
28일 세종병원 화재희생자 38명 중 6명의 발인이 이어졌다. 엄숙한 분위기에 속에 고인을 보내는 유족의 심정은 비통하기만 했다.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것과 함께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안전 불감증’도 이별했으면 한다. 더불어 ‘안전 후진국’이란 불명예를 떨쳐버릴 정부대책이 하루빨리 이뤄지도록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