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2일(현지시간)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했다. 당장 우리 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통상 당국과 업계는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 수입 급증으로 자국 내 제조업체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덤핑 등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아도 자국 내 업체가 심각한 피해를 보면 관세인상이나 수입량 제한 등을 통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무역장벽 조치 중 하나다.
이번에 결정된 세이프가드 수위는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11월 내놓은 권고안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입산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서는 저율관세할당(TRQ) 기준을 120만대로 설정하고, 첫 해에는 120만대 이하 물량에 대해서는 20%,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한다. 2년차에는 120만대 이하에는 18%, 그 이상 물량에는 45%의 관세를 부과하고 3년차에는 120만대 이하에 16%, 그 이상 물량에 40% 관세가 부과된다.
부품의 경우 1년차에는 5만대까지 관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초과 물량에는 50% 관세가 붙는다. 2년차에는 7만대 초과분에 45%, 3년차에는 9만대 초과 부품에 40% 관세가 적용된다.
이와 함께 중국, 한국 등에서 수입한 태양광 셀과 모듈에 대해서는 2.5기가와트를 기준으로 1년 차에는 30%, 2년 차에는 25%, 3년 차에는 20%, 4년 차에는 15% 관세가 부과된다.
세탁기 세이프가드의 기준선으로 설정된 120만대는 삼성과 LG가 매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세탁기 물량에 턱없이 밑도는 수준이다. 또 TRQ 120만대에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세탁기가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미국으로 세탁기를 수출하는 모든 국가의 수출량이 다 합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대미 세탁기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삼성과 LG가 차지하고 있어 이번 조치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삼성과 LG는 미국 현지에 짓고 있는 세탁기 공장의 완공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3억8000만달러, LG는 테네시주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다.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에서 세탁기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LG는 당초 2019년 1분기에 완공예정이었던 테네시주 세탁기 공장 완공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앞당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이프가드 발동을 두고 지나친 자국기업 보호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3분기까지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을 보면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월풀이 37.7%로, 삼성(17.1%)과 LG(13.5%)를 합친 것보다 높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정책과 금융지원 등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들과 연대해 미국을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