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신호등을 통해 바라본 복지사각지대 발굴과 복지허브화
[독자투고] 신호등을 통해 바라본 복지사각지대 발굴과 복지허브화
  • 신아일보
  • 승인 2018.01.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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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988년, 당시만 하더라도 자동차가 많지 않았고, 학교 앞 도로는 늘 한산했다. 등하교 시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로 위 자동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넜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이를 본 담임 선생님께서는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시며,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빨강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고 나서 건너야하고 양쪽을 살핀 후 천천히 손을 들고 건너라고 교육하셨다.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손을 들고 건넘으로써 운전자들에게 현재의 내 상태를 알릴 수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신호등은 주의와 정지 그리고 이동이라는 세 가지의 의미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흥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동두천시 불현동행정복지센터에서 읍면동 복지허브화 업무를 담당하면서, 현실속의 장벽에 갇혀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최근 신호등이 내게 새로운 영감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그 선물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업무를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지고,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신호등은 내게 복지허브화의 핵심인 복지사각지대 발굴의 중요성을 세 가지 색상을 통해 보여줬다. 사람들은 신호등을 수학 공식처럼 인식하여 주황신호등은 주의와 경고, 빨강신호등은 정지와 멈춤, 초록신호등은 이동으로 정의내리고 자신도 모르게 반응한다.

얼마 전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드라이브를 하던 내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신호등의 지시대로 주행과 정지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신호등이 보여주는 불빛의 색상에 대비해 복지사각지대 발굴 우선순위와 접근방법을 생각해보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초록신호등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언제든 위기상황에 놓일 수 있는 미래의 복지사각지대로, 주황신호등은 하루 빨리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위기상황을 겪고 있는 오늘의 복지사각지대이며, 빨강색 신호등은 위기상황을 넘어 중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지금 당장 지원 가능한 모든 공공·민간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긴급한 복지사각지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세 가지의 유형으로만 복지사각지대 전체를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주황신호등과 빨강신호등의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복지허브화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고도화 되어 위기가구의 정보를 주기적으로 통보해줌으로써, 일정부분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은 지역 내 복지 증진을 위한 열의가 있고 지속적인 발굴 활동이 가능한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과 복지통장, 반장 등의 인적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안전망을 강화하고, 주변 이웃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제보하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체계를 구축해야만 자생적 복지허브화를 실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나의 발걸음을 몇 차례 멈추게 한 빨강신호등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바뀐 초록신호등이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위기상황에 놓여있지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이글을 읽고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위기라고 느끼는 지금 이순간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동두천시 불현동 행정복지센터 변형철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