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관치(官治) 논란이 금융권을 어지럽히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반대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금융권에서는 그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을 ‘적폐대상’으로 몰아붙이자 금융권 여론은 뒤숭숭해 졌다. 금융당국은 관치가 아닌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였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는 듯 하다.
하나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6일 김정태 현 회장과 김한조 전 외환은행장, 최범수 전 한국크레딧뷰로 사장 등 3인으로 후보를 압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과 심층면접, 질의응답을 실시한 뒤 오는 22일 1명의 최종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하나금융의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 1호 기업 특혜 대출 의혹’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김 회장 연임시도에 몇 차례나 제동을 걸었지만, 하나금융은 이를 거부했다.
금융당국은 앞서 ‘하나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왜 서두르나’,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강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분이 연임에 성공해도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등의 발언으로 금융권이 그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놓고 벌어진 대립이 일단은 봉합됐다. 하지만 언제 다시 확전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금융당국이 규제, 인허가, 검사, 감독, 제재라는 관치(官治)의 칼을 금융권에 들이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만 따진다면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제도적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 금융권은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시장 질서를 무시한 채 정부나 권력이 사사건건 감시와 간섭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금융당국의 수장들이 직접 나서 민간영역에 관치의 칼을 들이대려는 시도는 볼썽사나울 뿐 아니라 시도 자체가 구습이고 폐습이다.
대한민국 헌법 9장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뒤에 나오는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119조 2항을 더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기본인 1항보다 보충인 2항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에서 살아온 탓이다. 인간이 환경을 인지할 때, 자신에게 영향을 주거나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만을 인식하는 경향 득 ‘선택적 인식’이다
대한민국 경제 질서는 ‘시장의 자유가 기본이고 국가의 개입은 보조’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가의 시장 개입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혹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해 허용될 뿐이다.
적폐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최 위원장이 밝힌 ‘금융권 적폐’는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뿌리 뽑으려면 조직, 사회, 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금융권의 적폐보다 심각한 것이 정부 권력의 ‘관치’에 대한 미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