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왕조(王朝)의 꿈' 현대건설] ② 허무맹랑 현대차그룹의 건설육성 청사진
[잊혀진 '왕조(王朝)의 꿈' 현대건설] ② 허무맹랑 현대차그룹의 건설육성 청사진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8.0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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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간 2020년 120조 수주·55조 매출 비전
이제 와 "계획표일 뿐 달성 의무 없다"며 발뺌
서울시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입구.(사진=신아일보DB)
서울시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입구.(사진=신아일보DB)

6년여 시간 현대건설을 이끌어왔던 정수현 전 사장이 Recover(회복), Redesign(리디자인), Relight(재점화)라는 의미심장한 키워드를 남기고 떠났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에 담긴 속 뜻은 무엇일까? 현대라는 거대 그룹을 대표했던 현대건설은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꿈과 함께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선봉에 서 왔다. 이 같은 적통(嫡統)을 계승하고 싶었던 현대차그룹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결국 현대건설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현대건설을 글로벌 종합엔지니어링 기업으로 키우겠다던 그들의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창립 70주년을 넘어 100년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에 선 현대건설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오너 2·3세의 욕심을 채워 줄 그럴듯한 재물로 전락할지 주목된다.<편집자주>

현대차그룹은 7년 전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오는 2020년까지 수주 규모 120조원, 연매출 55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목표시점을 3년 앞둔 현재 이 같은 비전을 평가하는 것 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현대건설의 중간성적은 초라하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청사진은 계획에 불과할 뿐 달성 의무는 없다며 꼬리를 내렸다.

지난 2010년10월 현대건설을 두고 현대그룹과 치열한 인수전을 펼쳤던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건설에 대한 인수 후 발전 방향 및 비전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20년 수주 규모 120조원 달성 △2020년 연매출 55조원 달성 △2020년 직·간접 고용인원 41만명으로 확대 △2020년까지 총 10조원 투자 등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기존 시공 위주의 기업에서 글로벌 고부가가치 종합엔지니어링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청사진과 함께 강한 인수의지를 내비쳤던 현대차그룹은 이듬해 4월 마침내 현대건설을 품에 안았다.

2018년 새해가 밝으면서 약속의 2020년말이 꼭 3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10년 계획의 절반을 넘어선 지난 2016년 현대건설의 중간성적표에 비춰봤을 때 현대차그룹이 공언했던 청사진의 실현 가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청사진이 발표됐던 2010년 당시 21조8272억원이었던 현대건설 연간 수주액은 6년이 지난 2016년 21조2295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 수주액을 6배로 늘려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연매출은 2010년 11조3779억원에서 2016년 18조7445억원으로 7조3666억원 늘어났다. 연매출 55조원 달성까지 36조2555억원 부족하다.

2010년 당시 추산됐던 현대건설의 직·간접 고용인원은 9만여명이었고, 이 중 현대건설 정규직원은 3795명으로 약 4.2%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일한 비율로 환산해보면 2016년 현대건설의 직·간접 고용인원은 10만6000여명(정규직원 4461명)으로 추산된다. 6년 동안 1만6000여명 증가에 그친 직·간접 고용을 4년간 30만명 이상 늘려야 계획했던 41만명에 도달할 수 있다.

2020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겠다던 약속은 측정 자체가 쉽지 않다. 현대건설에서는 그룹차원에서 이뤄지는 투자의 범위를 어느 선까지 봐야할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고, 현대차그룹은 투자와 관련해서는 공시내용 외에는 비공개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2010년 현대차그룹이 제시했던 2020년 계획 대비 현대건설 연간 수주액 변화 추이(단위:조원).(자료=현대차그룹·현대건설)
2010년 현대차그룹이 제시했던 2020년 계획 대비 현대건설 연간 수주액 변화 추이(단위:조원).(자료=현대차그룹·현대건설)
2010년 현대차그룹이 제시했던 2020년 계획 대비 현대건설 연간 매출액 변화 추이(단위:조원).(자료=현대차그룹·현대건설)
2010년 현대차그룹이 제시했던 2020년 계획 대비 현대건설 연간 매출액 변화 추이(단위:조원).(자료=현대차그룹·현대건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현대건설이 일반적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초고속 성장 무기를 갑자기 꺼내놓지 않는 이상 현대차그룹의 청사진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판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 스스로도 2020년 비전 달성을 자신하지 못 했다. 한 술 더 떠 청사진은 꼭 지켜야할 약속이 아니라며 인수전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청사진은 말 그대로 미래 계획표일 뿐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며 "해당 기간 저유가 및 해외 경기 침체로 인해 건설부문에 강점을 가진 현대건설에 악영향이 다소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유가 기조가 끝나감에 따라 해외건설 수주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지난해 수조원에 달하는 반포 재건축 등 국내 건설사업도 따내는 등 향후 점차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