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신년특집] ‘안전 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
[2018신년특집] ‘안전 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8.01.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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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에도 계속되는 人災·人災·人災
국가재난 시스템 구축 여전히 구멍 ‘숭숭’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세월호 수색현장 모습.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세월호 수색현장 모습.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선체는 참사 3년 만인 지난해 4월 9일 목포신항에 거치됐다. 녹슬고 찢긴 모습의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참상을 잊지 못한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무너지게 했다. 이에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다짐도 쏟아졌다.

하지만 2017년 한 해는 여전히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해상사고는 여전히 계속됐고, 화재 사고와 크레인 사고까지 끊임없었다. 더군다나 이들 사고들은 대부분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각종 사고 이후 정부가 항상 안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 역시 매번 거듭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한 해 발생한 사고 중 대표적인 안전사고를 되짚어 보고 현 정부의 국가재난 시스템 구축 실태를 살펴봤다.

◇ 영흥도 낚싯배 전복 참사… 지켜지지 않은 안전 규제

지난달 3일 오전 6시5분께 인천 영흥도 남서방 1마일 해상에서는 급유선 명진15호와 충돌한 낚싯배 선창1호가 전복됐다. 이 사고로 승선원 22명 중 1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2명은 해경의 수색으로 12월 5일 모두 발견됐다. 오전 9시35분께 선창1호 선장 오모(70)씨가, 낮 12시5분께 옹진군 진두항 남서방 1해리 해상에서 같은 방향으로 1.4해리(약 2㎞) 떨어진 해상에서 이모씨(58)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로써 이 사고의 사망자는 15명이 됐다.

선창1호 전복 사고는 급유선 명진15호 선장 전모(38·구속)씨가 선창 1호를 발견하고도 무전, 기적, 경광 등 피항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운항하다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씨는 사고 당시 휴대전화로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선박을 몰았던 사실도 확인됐다.

여기에 전씨와 함께 ‘2인 1조’로 조타실에서 근무한 갑판원 김모(46·구속)씨는 당일 새벽 4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선원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사고 당시에도 조타실을 이탈해 식당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선창1호 역시 사고가 난 영흥수로가 ‘좁은수로 항법(작은 배가 큰 배의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됨)’이 적용되는 협수로임에도, 이런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피항조치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검찰과 해경은 보고 있다.

이들의 근무 소홀과 더불어 해양경찰청의 초기대응도 미흡했다.

당시 수중구조팀은 신고 접수로부터 1시간 가량 지나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특수구조대는 양식장 등을 피해 우회하느라 현장 도착이 늦어지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는 복합적 원인에 의한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참사로 꼽히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을 발표하는 등 해상 문제에 대해 더욱 힘을 써 왔다.

하지만 안전한 나라가 만들어지기는커녕 해양사고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정부는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후속대책으로 선박안전 관리를 강화한 종합대책을 지난달 19일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낚시 전용선 도입을 비롯해 승선 정원 감축, 영업시간 통제 등 낚시어선 안전관리 강화와 함께 해경의 출동 문제를 개선한 대응체계가 담겼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

◇ 제천 덮친 화마… 부실 투성이 건물관리 피해 키워

지난달 21일 오후 3시 53분께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는 큰 불이 나 29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희생자 29명의 장례절차는 슬픔 속에 모두 마무리 됐지만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수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탓에 참사를 낳은 이유는 아직까지 무엇이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화재 규모에 비해 피해가 컸던 까닭은 역시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건물이 화재에 취약한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외장재인 드리이비트로 꾸며진 점이 화재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드라이비트는 불에 매우 취약해 대형 화재 때마다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여기에 화재 당시 연기와 유독가스를 밖으로 배출하는 '배연창'은 작동하지 않았으며,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셔터는 작동 불량이었다. 스프링클러 알람 밸브도 잠겨있어 일부 스프링클러는 작동조차 되지 않았다.

또 이 건물은 무허가 증축이 이뤄지고 용도까지 변경한 불법투성이 건축물인 탓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더더욱 배출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내구연한이 지난 소화기를 속이 텅 빈 상태로 방치했던 점 역시 확인됐다.

이 밖에도 사고 당시 해당 건물의 비상구는 창고 안에 유도등 안내 하나 없이 방치돼 있어 제구실을 하지 못했고, 화재 당시 스포츠센터 주변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은 소방관들의 구조를 30분가량이나 지연시켰다.

결과적으로 평소 건물 관리가 ‘부실 투성이’었다는 사실이 제천 화재참사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아직까지 정부의 건축물 화재안전대책의 실효성은 물음표에 그치고 있어 관련법을 고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번 제천 화재 참사가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 아파트 화재와 판박이인 탓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다중법), 재난안전관리기본법 등 관련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참사가 이어진다는 비판이 크다.

동시에 국민 개개인도 일상에서 안전을 해치는 요소를 하나하나 줄이는 작은 노력을 전개해야만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경기도 용인의 한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
경기도 용인의 한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타워크레인 사고 현장.

◇ 잊을만하면 ‘크레인 사고’… 정부 대책 효과 거둘까

지난해 전국 건설현장에서는 타워크레인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한 해 동안 모두 11건의 사고가 발생해 20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크레인 사고는 지난달 2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강서구청 입구사거리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다. 이곳에 있는 한 공사현장 크레인이 도로 방면으로 넘어지면서 당시 중앙버스차로 정류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승객 1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이 밖에 주요 크레인 사고를 살펴보면 △울산 에쓰오일 타워크레인 전도사고(4월21일. 1명 사망, 4명 부상)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5월1일. 6명 사망, 25명 부상)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크레인 사고(5월22일. 2명 사망, 3명 부상) △부산 해운대 숙박시설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사고(6월15일. 3명 부상) △경기 의정부 아파트 공사장 크레인 사고(10월10일. 3명 사망, 2명 부상) △전주 완산 크레인 사고(11월9일 2명 사망) △인천 중구 오피스텔 공사장 크레인 사고(12월9일. 1명 부상) △경기 용인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타워크레인 전도(12월9일. 3명 사망. 4명 부상) 등이다.

이들 사고 대부분은 안전점검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노후 크레인을 사용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정부는 타워크레인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는 한편, 강력한 규제조치가 망라한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정부가 강력한 안전대책을 내놓아도 건설 현장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 탓에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현장 관계자들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며 “공사 기간에 쫓겨 ‘빨리 빨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꿔야 하고 안전에 대한 교육도 철저히 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일선 크레인 기사들은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하도급과 재하도급 문제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크레인 등 중장비를 최저가로 입찰해 하도급을 주다 보면 업체들도 안전보다는 비용과 속도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안전교육과 관리를 담당하는 현장 직원은 계약직으로 채용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힘있게 근로자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전수조사가 요식 행위 정도로 이뤄질 경우 타워크레인 사고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안전에 소홀한 원청업체에도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 근로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박고은 기자 gooeun_p@shinailbo.co.kr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