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파사현정은 원래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파사현정이 선정된 이유는 지난 1년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국정농단의 박근혜 정부를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부의 출범으로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또한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소망도 담겼다.
‘적폐’로 규정되는 박근혜 정권과 달리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는 사뭇 다르다. 지난 정권의 민주주의의 퇴보를 새 정부에서는 개혁을 통해 보다 바른 것들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것이다.
최근 금융업계에서는 ‘신(新) 관치(官治)’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작심발언에 이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교감하면서 민간 금융지주사 옥죄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17일 내년 1월 중으로 주요 금융지주들의 경영권 승계절차,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운영 등에 대한 검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달 말 조직개편에 따라 금융그룹을 다룰 담당부서가 검사반을 편성한다고 알렸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할 때 올해 지주회장 연임에 성공한 KB금융지주와 내년 3선 도전을 앞둔 하나금융지주를 겨냥한 것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정설로 굳혀지고 있다.
11월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금융지주 회장들을 겨냥한데 이어 지난 11일 최흥식 금감원장이 지주회장들의 ‘셀프 연임’을 거듭 문제 삼으면서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결국 17일 발표된 금융지주 회장선임 검사는 예고가 현실화 된 것뿐이다.
문제는 금융업계에서 민간영역인 금융지주 회장 선임에 당국이 제도개선을 명분으로 개입하는 게 ‘인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관치(官治)라는 비판이 높아지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제도 운영을 실질적으로 개선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금융당국 수장들이 바뀌자 기존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들을 압박해 몰아내는 양상이 기존 관치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경영에 관여하거나 특정 개인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고 거듭 해명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지난 정권들을 그대로 답습한 ‘특정인 찍어내기’와 다르지 않다는 여론이다.
금융권에서는 이전 정권의 ‘몰염치’에 대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 정부에서도 ‘악습’을 배제하지 않고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전진 배치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목한 것 같다고 꼬집는다. 금융당국이 특정인을 겨냥하고, 그 배경에 갖가지 추축들이 난무한 상태라면서 만에 하나 시장에서 의심하는 게 사실이라면 이후 여론의 역풍을 맞는 리스크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 그리고 금융당국은 ‘파사현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기고 개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현장’의 무거운 뜻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