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이자 어린 황제 동치제의 모친이었던 서태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48년간 막강한 권력으로 정권의 실권을 쥐락펴락 했으나 결국 중국의 반식민지화를 가속시키고 청을 몰락의 길로 몰아넣었다.
역설적이게도 서태후의 마지막 유언은 “농단 당하면서도 모르기 쉬우니, 다시는 여자가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하라”였다.
후한말의 왕조 몰락의 주역이었던 십상시(十常侍)가 그러했듯, 서태후도 환관과 간신에 둘러싸여 사치의 끝판왕을 달리다 병들어 죽게 되는데, 그도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돌아보니 잘못됐다는 올바른 생각이 들었나 보다.
1년 전 온 국민을 분노에 휩싸이게 한 현대판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사건의 주역과 주변 조연들은 중국의 서태후나 십상시에 많이 비유되곤 했는데, 아마 마지막 유언 속에 그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한다.
‘농단 당하면서도 모르기 쉽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는 언제나처럼 역사 속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파당을 만들고 반대파와 대립하며 권력을 집중시고 온갖 부조리를 자행했다.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오직 권력을 쟁취 하는 것에만 몰두하다보니 민초는 뒷전이고 권력자들의 영달을 위한 일들만 뒷방에서 쑥덕거리게 되기 일쑤였던 적이 우리 역사에도 비일비재하다.
고려말 공민왕때 신돈이 그러했고, 조선말 고종 때 무당 박창렬인 진령군이 그랬다.
다행이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박 정권 시절 충신 중 한명인 안종범 수석이 꼼꼼하게 남겨 놓은 ‘사초(史草)’가 농단의 실체를 푸는 실마리가 돼 줬고, 이제 단죄의 판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해 10월24일 최순실씨 태블릿PC의 언론 공개로 시작된 국정개입의혹 사건은 결국 정권의 최고 권력자를 탄핵케 했고, 3인방이라 불리던 이들과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 주변인들의 부조리들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게 했다.
최 씨는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 미수, 사기 미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과 알선수재,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사실만 무려 18개에 달해 결국 14일 결심공판에서 25형과 벌금 1262억원의 중형을 구형 받았고, 최종 법원의 선고만 남겨뒀다.
이날 검찰은 구형에 앞서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과 끝’이며 ‘소위 비선실세로서 정부 조직과 민간 기업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한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국가 위기 사태를 유발한 장본인’이라고 논고를 밝혔다.
특검도 “후대의 대통령들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고 책무를 다함에 있어서 준엄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엄한 처벌을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최 씨는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 “늘 대통령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떠나지 못했고, 주변인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르고 상처뿐인 인생이 됐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농단 당하면서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죄가 되기에는 충분하고 남을 듯싶다.
최 씨의 판결은 결국 박 전 대통령 판결의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은 정치적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제발 이 정치적 트라우마를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고난의 시금석(試金石)으로 삼아 다시는 권력을 위한 권력을 지향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