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가 12일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인선에 들어간다. 재선이 유력했던 황영기 회장이 지난 4일 불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황 회장은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를 언급했다. 이 말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라틴어로 외교적 기피인물을 표현하는 외교언어다.
지난달 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들이 그룹후원을 받아 계속 회장에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 경우가 또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데 따른 답변으로 풀이된다.
금투협 회장은 증권사 56곳, 자산운용사 169곳, 선물사 5곳, 부동산신탁사 11곳 등 총 241개 금융사가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금융당국과 호흡이 중요하지만 규모가 조금 큰 이익단체에 불과한 민간 협회장의 출마까지 금융위원장이 압박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금융당국의 숨은 의도를 헤아려야 하는 일은 또 있다. 지난 10일 금융당국이 주요 금융회사들의 경영권 승계체계를 점검하겠다고 나선 일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이 시행됐지만 금융회사들이 임추위 구성이나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을 법의 취지에 따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법령 개정 등을 통해 고칠 것이라고 표명했다.
이날 발표도 지난달 29일 최 위원장의 예고가 구체화된 것뿐이다. 당시 최 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에서 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CEO의 유고(有故)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승계 절차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쟁자를 인사 조치해서 대안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계속해서 연임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중대한 책무유기라고 힐난했다.
금융권에서는 최 위원장의 잇따른 발언에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황 회장은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시장주의를 중시하는 한편 현 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기 때문에 ‘결이 달라서’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평가다. 경영권 승계체계 점검도 최근 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KB금융지주의 승계 프로그램이 형식적이어서 내부적으로 후보자가 누구인지조차 공유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하나금융지주는 김 회장이 차기 경쟁자를 미리 솎아내고 ‘셀프 연임’에 나서려 한다고 의심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금융권 홀대론’이 대두된 적이 있다. 금융당국 수장 임명도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금융당국으로서는 타 부처보다 ‘J노믹스’의 구체적 준비가 촉박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들을 놓고 볼 때, 금융당국 수장이 금융권을 바라보는 인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금융권 내의 질서를 모두 청산해야 할 ‘적폐’로 생각하지 않는가 말이다. 시장의 흐름과 민간의 자율은 물줄기와 같다. 작은 물줄기도 방향을 조금 틀 때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거스르려 한다면 반드시 많은 부작용과 후유증이 남는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