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새벽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록 법정시한을 나흘이나 넘겼지만 예산규모는 정부안 429조 원에서 1375억 원 삭감된 수준에서 큰 틀을 유지했다. 여야 간의 핵심 쟁점이던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보전을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은 사실상 원안 그대로 반영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이 잠정잠의를 이끌어낼 때까지 제1야당 한국당은 한없이 무기력했다. 다음날 한국당이 지도부 비판과 함께 수정예산안에 반발하면서 표결에 불참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만으로도 의석수 과반을 넘기면서 예산안 처리에는 문제는 없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수진영에서까지 ‘쓸데없는 한국당의 몽니’, ‘한국당 패싱’이란 표현을 써가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린다.
이번 예산전쟁에서 문재인 정부의 기를 꺾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야당의 공세는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여소야대의 정국이라 어느 때보다 녹록치 않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뒤늦게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한국당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 정부 첫 예산이 큰 타격 없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예산안 본회의 처리과정을 돌이켜볼 때 아쉬움 투성이다.
국회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국민이 가장 바랐던 모습은 ‘협치’였을 것이다. 원래 정치가 협상과 타협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니 서로 생각이 다르다가도 한 가지의 결과물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국민들은 날마다 으르렁거리는 정치권이지만 새 해, 새 예산만큼은 서로 양보하고 합의하는 모습을 원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협치는 찾아볼 수 없고 온갖 정치적 흥정과 뒷거래에 가까운 타협뿐이었다. 과반수 의석이 채 안되는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 유지를 위해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에게 확실한 대가를 지급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의 의도대로 예산안을 통과시켜주는 대신 호남KTX 무안공항 경유 등의 실리를 챙겼다. 중대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민주당의 협력도 약속받았다는 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도 상당부분 챙겼다는 후문이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숙원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관행에 따르면 쪽지예산과 예산부처 윽박지르기는 비일비재했다. 지역구 예산을 위해 억지를 부릴 때도 다반사다. 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일부 의원들이 그 권한을 빌미로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새해 예산안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이끌어낼 동력이다. 물론 그 중요성을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근본인 합리와 상식을 뒤엎을 수는 없다. 비록 뒤늦게 새해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그 과정을 각 정당은 겸허하게 복기해보고 자성해야 한다. 정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말이다.
정당은 각자 추구하는 정치 철학과 가치를 앞세운다. 그것들이 훼손되면 당장은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모래성에 불과할 뿐이다.
협치의 노력을 게을리 하고 거래에만 몰두했던 민주당과 국민들이 부여한 캐스팅보트를 무기삼아 당리당략만 쫓은 국민의당, 정치적 존재감은커녕 무기력함만 보여준 한국당 모두 정치적 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