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건이 난 직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취한 공식 조치는 해양경찰청의 해체였다. 해난 사고이니 만큼 담당 관청인 해경이 일정 부분 책임이 없다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해경에 물어 해경 자체를 해체시켜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물론 세월호 사건의 경우 완전한 진상규명이 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는 있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선 1차 책임은 선사인 (주)세모에 있으며, 해경은 관리부실 책임과 구조 부실의 2차 책임은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수습 과정에서 기껏 한다는 대통령의 조치행위가 해경 해체라면 서해나 동해 해상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불철주야 근무하고 있는 해양경찰들의 사기는 누가 책임져야 했을까?
비교할 만한 사례를 우리는 일본에 찾을 수 있다.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현에 있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이 사고의 첫 번째 원인은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였다. 그러나 가만히 내부를 들여다보면 자연재해보다 인재에 가까운 것이 초기에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바닷물이라도 부어 냉각시켰다면 방사능 누출까지는 막을 수 있었겠지만, 발전소를 살려보겠다고 무려 30일간이나 대처에 늑장을 부린 도쿄전력과 감독관청인 일본 과학기술청의 잘못은 실로 엄중하다 할 수 있다.
이 사고로 후쿠시마 일대는 아직까지 폐허로 남아있고 바다로 흘러간 고농도 방사능으로 인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기피현상, 나아가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 사건 발생 이후 일본 정부가 해당 관청인 과학기술청을 해체하거나 폐쇄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서훈 국정원장이 발표한 국정원 개혁안에 따르면 국내 대공수사 분야는 폐쇄하고 해외정보 수집 기능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개편한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우리 국정원이 본래의 기능과 목적을 망각한 채 국내 정치에 관여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당연한 조치이니 어찌 보면 국정원 스스로 초래한 자충수요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는 통치자나 임명받은 국정원장 등 책임자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일이지 국정원의 고유 업무 자체를 폐쇄시킬 일인지 의문이 간다. 국정원에서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서 중 국내 정치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불러 다시는 이러한 보고를 올리지 말라고 한마디만 하면 언제든 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 1월, 북한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로 날아가 스탈린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스탈린은 전쟁 발발 시 김일성이 말한 미군의 개입은 없을 것이라는 것보다 박헌영이 말한 30만 남로당원의 호응설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남침을 승인했다는 것이 구소련 기밀문서 해제로 밝혀졌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과 수사가 왜 중요한지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주는 사례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를 염려해 국내분야 정보수집과 수사기능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 부엌칼도 강도가 사용하면 범죄도구가 되고, 셰프가 사용하면 맛있는 요리가 나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