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12월2일을 끝내 지키지 못한데 이어 타결조차 쉽게 예상하지 못할 만큼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4일 본회의에서 극적 타협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야 간 간극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연말까지 예산 정국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신속한 예산 처리를 통해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민을 향한 국회의 의무라고 압박한다. 청와대도 물밑협상을 예의주시하며 한병도 정무수석 등 참모진이 다양한 경로로 의원들과 접촉해 예산안 편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젠 여당이 결단하지 않으면 예산안 협상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도 공무원 증원은 미래세대에 너무나 가혹한 짐을 지우는 일이라면서 수용 가능한 수정안을 마련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여당을 반박한다.
여야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는 부분은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이다.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 구현과 직결된 항목이라는 점에서 양보가 어렵다. 야당은 일자리 창출은 민간의 몫이라며 향후 막대한 예산이 지속해서 소요될 공무원 증원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은 1년 시한으로 한정해서 지원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정부·여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은 한시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내년 상반기 집행상황을 보면서 경제여건 등을 고려해 소프트랜딩(연착륙)하는 방안을 하반기에 결정할 예정이다.
좁혀지지 않는 쟁점 탓에 연말까지 예산안을 놓고 대치정국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이 여소야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루한 공방을 거듭하는 동안 모처럼의 경제 회복 기미가 사그라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세계 경기 호조에 힘입어 한국경제에 내년에도 훈풍이 불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출 증가세가 여전히 이어지고 내수가 올해보다 다소 살아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내년 3% 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정책 탓에 자칫 429조 원에 달하는 전체 예산안이 통째로 발목을 잡히면 재정 집행 시기를 놓쳐 지출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예산안이 예정대로 집행되려면 예산안 통과 이후에도 국무회의 의결, 예산 배정, 부처·사업별 집행 준비 등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특히 아동수당, 일자리 안정자금 등 사업 규모가 작지 않은 새 정부 첫 사업들은 사업 시행 준비를 위해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이다. 지방 정부 사업 중 중앙 정부 예산을 매칭하는 사업들도 중앙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재정이 투입되는 정책들은 예산안 확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만큼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투입 예산이 확정되지 않으면 관련 부처 논의부터 세부 조율이 되지 않아 공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