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 159만명에 대해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한차례에 한해 채무원금을 탕감해주기로 했다.
29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당정협의를 가진데 이어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은 내년 2월부터 신청을 받아 상환능력심사를 거쳐 채무를 없애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장기소액연체채무자는 무거운 현실은 평균 채무액 450만원, 연체기간 14.7년이다. 이들 중 약 12만 명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60세 이상의 고령자이고 대부분 신용등급 8~10등급의 저(低 )신용자다.
이들은 금융회사가 대부업체 등에 부실채권 재매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끝없는 추심에 시달려왔다. 63.5%가 1차례 이상 시효가 연장된 채무로 평균 연체 기간은 약 14.7년에 달했다.
채권추심의 압박에도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라면 재기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 이번 대책의 취지다.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 생산 현장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는 명분도 있다.
정부는 자력으로는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운 채무자들을 ‘도덕적 해이’라는 틀에 가둬 상환을 통한 채무 해결만을 기다리는 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들이 평생 연체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사회, 경제적으로도 비생산적인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신용질서를 훼손하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채무탕감 정책이 자칫 정권 초기마다 벌이는 ‘빚잔치’로 인식되는 것도 불편하다. 정부는 ‘일회성 대책이고 한시적 조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신용회복기금을 조성해 5000만원 미만 6개월 이상의 다중채무자를 구제한 이명박 정부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1억원 이하 6개월 이상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를 감면했던 박근혜 정부도 ‘일회성 정책’임을 강조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엄격한 상환능력 심사’가 필요하다.
정부는 엄격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세청,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보유한 채무자의 소득 및 재산 정보를 활용키로 했다. 상환불능으로 판명돼도 곧바로 채권을 소각하지 않고 최대 3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유예기간 후 최종 처리하기 전에 상환능력을 다시 한 번 심사한다.
재산을 은닉하거나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감면받는 채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도 마련됐다. 전국 36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부정감면자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부정 감면자가 발견되면 감면 조치를 모두 무효화하고 이를 신고한 사람은 포상하기로 했다. 부정 감면자는 신용정보법상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해 최장 12년간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대규모 빚 탕감을 남발하면 그만큼 부작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자칫 돈을 빌려도 정권이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채무탕감 대책을 꺼내들 것이란 그릇된 신호를 줄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은 신용과 자기책임 원칙의 토대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 원칙을 허물긴 쉬워도 다시 세우는 것은 수십, 수백 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