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가 결국 14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3/4분기 중 가계신용(잠정)’을 보면 9월 말 가계신용 잔액은 1419조1000억원으로, 3분기 동안 31조2000억원 증가했다. 가계신용 잔액은 한은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다.
가계부채가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관성 힘을 받아 멈추지 않고 월 10조원씩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게 심각하다. 그 증가속도가 오히려 빨라졌다고 하니 신중하게 다시 대책을 찾아봐야 할 때이다.
문재인 정부는 진즉부터 가계부채를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판단하고 대출 옥죄기에 나섰다. 은행권의 신용대출은 물론 주택담보대출 관리를 강화하면서 더 이상 가계 빚이 불어나지 않도록 압박 중이다. 그럼에도 그 효과가 미미한 것은 이미 경제구조가 빚으로 돌아가는 가구가 많다는 점이다.
정부가 대출을 옥죄면서 시중에선 자금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단순히 은행돈으로 집을 사서 이득을 보려는 계층이 겪는 곤란함이 아니다. 당장 생계수단으로 돈을 융통하고자 하는 이들조차 제때 돈을 못 구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행권 대출이 막히자 신용등급이 좋은 사람들도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몰렸다. 같은 신용등급인데도 은행권의 2배가 넘는 이자를 감당하면서 대출에 줄을 섰다. 2금융권으로서는 우량 고객이 몰려들자 반색했지만 정작 주 이용고객이던 7~9등급 신용자들은 돈을 구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이들은 신용카드사의 장기 론이나 현금 서비스를 전전하거나 대부업체로 밀려났다.
저신용자의 문제를 엄격히 따지자면 개인 사정으로 치부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약속한 신용을 어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른 감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신용도라는 원칙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저신용자라는 굴레가 경제생활에 치명적이라면 제도를 보완해서라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됐거나 사업 부진으로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작은 실수로도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적은 돈이 연체되거나 실수로 제 때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부분 기간에 따라 신용도가 회복되기는 하지만 한 번 떨어진 신용도를 다시 올리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다시 경제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 번의 사업 실패로 평생을 금융권에서 퇴출되는 사람들이다. 제도적으로 파산면책 제도가 있지만 아직 미완된 제도다.
법과 제도는 있지만 채권자인 금융권이 마음만 먹는다면 탕감 조건이 되더라도 연장에 재연장을 통해 20여년을 발목 잡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모럴 해저드’를 운운하며 안 될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앞으로의 꿈과 희망을 갖지 못하고 그저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행복기금과 홀씨 대출 등 유용한 서민금융 지원제도가 있다. 하지만 보다 효율적인 지원책이 아쉽다. 한 번 실패가 영원한 낙오가 되지 않도록 구제의 사다리를 제재로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패자 부활전이다.
‘경제 부활전’을 통해 다시 창업을 하고 경제활동에 당당히 나서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가계부채 1400조원의 두려움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