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권이 혼란에 빠졌다. 원인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 실체네 대해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금융계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또 다른 구태이고 적폐의 연속이다.
최근 금융업계에선 볼멘소리가 자주 들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관치(官治)’가 다시 고개를 든다는 하소연이다. 일각에서는 ‘관치’를 넘어 정치가 움직이는 ‘정치(政治)’, 노조가 활개 치는 ‘노치(勞治)’, 시민단체가 간섭하는 ‘시치(市治)’까지 더해졌다는 푸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권 길들이기는 있었다. 경제 정책의 집행을 위해 금융권을 장악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초기 ‘금융홀대론’이 불거졌을 때까지만 해도 기우(杞憂)이길 바랐다. 그러나 금융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연결해보면 걱정을 내려놓기 어렵다.
21일 오전, 허인 KB국민은행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하지만 전날 KB금융지주 임시총회에서 시끄럽던 일들을 생각하면 드러내놓고 축하하기가 쑥스럽다. 20일 치러진 임시주총의 핵심은 두 가지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연임승인과 노동이사제의 도입이다. 그 뒷면에는 정권과 금융당국의 껄끄러움이 그림자처럼 숨겨져 있다.
윤 회장의 연임은 진즉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그는 KB금융을 9년 만에 ‘리딩뱅크’ 자리에 다시 세우는 성과를 보여줬다. 윤 회장은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겸직을 내려놓으면서 새 은행장에 허인 행장이 내정됐다. 하지만 노조는 성과를 인정하기보단 과정상의 문제를 시비로 ‘연임 반대’를 주장했다. 결국 윤 회장은 사정당국의 압수수색까지 당해야 했다.
임시주총의 화두였던 ‘노동이사제’ 도입도 씁쓸하기만 하다.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밀어붙이기식의 주장이었다. 문제는 최대주주 자격으로 국민연금이 찬성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도입 시도는 무산됐지만 금융권에 관치에 이어 노치가 구체화 되는 포인트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굳이 연금공단 임원추천위원회에 민주노총 출신 2명이 영입된 것과 연결한다면 너무 비약적일까.
우리은행도 채용비리와 관련해 사임한 은행장의 후임 인선 절차 중이다. 지난 1월 과점주주 사외이사의 검증을 뚫고 2년 연임에 성공했던 이광구 행장이 채용비리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는 당시 16년 만의 민영화 달성과 비약적인 실적 개선을 성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실적이나 성과보다는 ‘채용비리’라는 낙인이 찍혀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아직은 우려이길 바라지만 우리은행장 인선 과정이 과연 자유롭게 추진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만일 정권과 금융당국의 의중을 알아서 읽어야 하는 일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커진다. 우리은행이 아직 완전 민영화로 가기까지 험난한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금융은 경제 흐름에 따라 순환돼야 한다. 시장의 흐름과 달리 억지로 방향을 틀려고 하면 그 만큼의 반작용의 위험이 따른다. 혈맥이 막히면 인체에 탈이 나듯 우리 경제에도 자본의 흐름이 경색되거나 동맥경화가 나타나면 그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관치나 정치, 노치가 억지로 방향을 되돌리거나 할 수 없게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