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는 한국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만 그 아픔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체질 개선에 성공했지만 비정규직 증가 문제와 영세자영업자 증가로 인한 소득 양극화 고착 등 문제도 남겼다.
다행히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기초체력을 배양한 것은 큰 위안이다. 1997년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102억8500만달러 적자였다. 올해는 1~9월 누적 흑자가 933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보유외환 부족도 해결됐다. 1997년 연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204억달러에 불과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만기 1년 미만 단기외채의 비중은 286.1%에 달했으니,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외화 빚이 가진 돈보다 3배 가까이 많았던 셈이다. 올해 10월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844억6000만달러로 20년 전의 18.4배로 불어났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30.8%(6월 기준)로 뚝 떨어져, 단기 외화 빚을 다 갚아도 잔고가 현재의 70% 가까이 남는다.
IMF는 우리 사회에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사라지게 했다. 이전에는 직장에 한번 입사하면 정년퇴직 때까지 다니는 곳이었지만 기업의 구조조정이 상시화 되면서 평생직장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구조로 변했다.
고용의 유연성이 강조되면서 비정규직이 급증했고 직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은 생계형 자영업자 문제를 키웠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임금근로자와 생계형 자영업자 등의 양극화로 소득 격차는 갈수록 확대됐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1% 미만이었던 연평균 비자발적 이직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7% 이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20세 이상 인구 중 최상위 10% 소득집단의 소득 비중은 1999년 32.9%에서 2015년 48.5%로 치솟았다. 반면, 2015년 10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전체 소득자의 38.4%, 2000만원 이하는 59.5%를 차지했다. 하위 50%의 소득 비중이 낮은 이유는 미취업자와 저 소득자가 많다는 얘기다.
미취업자, 실업자, 근로 빈곤층, 저 소득자와 이 경계를 넘나드는 인력이 많아지자 기업들은 임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서도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저임금이 지속될 수 있는 배경이다.
‘IMF’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극복과정에서 고착화 된 저성장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찾듯 아픈 기억에서 밝은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공정한 거래로 인한 낙수효과가 이어지면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 수 있다. 소득 불평등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공정거래 구조 확립과 자영업자 지원책에서 찾아야 한다.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계약 구조가 공정한 방식으로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하청업체는 원청인 대기업과의 계약관계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을 때가 많고 이 둘 사이의 협상력 차이로 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생계형 자영업자도 최저 임금 인상으로 구조조정을 하기 보다는 산업정책 개편으로 풀어야 한다.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기회형 자영업자로 바뀌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