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호들갑이다. 물론 너무 많은 부채는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기 전반적으로 불황에 빠져들게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갚아야 할 부채가 많은 사람이 빚 갚기를 게을리 하고 소비만 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빚을 갚게 한다면 최소한의 소비보다는 건전한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1400조원의 가계부채가 부담스럽지만 장기적 연착륙 전략을 유도한다면 결코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한 때 정부는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야한다고 부추겼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모든 경제가 주저앉을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은행권에서 빚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상환 능력을 따지기보다는 주택 가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격부양을 하라는 압력용 대출 카드였다. 당시 정부의 정책을 믿고 은행대출로 집을 구매한 사람들이 이제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급함은 성장주도의 경제정책에서는 당연한 논리였다. 어떻게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경제가 위축되고 결국 정치권에서는 선거의 패배라는 자멸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묻어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성장주도형 경제보다는 소득주도형 경제를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양극화를 허물기 위해 소득의 양극화부터 잡겠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전 정부와 많이 달랐다. 수출주도형 성장을 위해서 많은 혜택을 주던 정책들이 일단 제자리걸음을 했다. 기업은 그동안의 혜택에 익숙해져 앓는 소리를 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각종 세제 혜택과 자금 조달 편의 등을 내려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 증대가 정부 의지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높인 소득이 결국 소비를 진작시켜 기업이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경제 선순환’의 고리에는 일자리 창출이란 절대명제가 달려있다.
하지만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는 청년 실업률은 개선될 조짐이 없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가 힘겨운 게 사실이다.
결국 취업보다는 창업에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청년백수들은 탈출구로 스타트업이나 창업에 나서고 있고, 본격적인 은퇴 전선에 내몰린 베이비부머들은 높은 위험률을 알면서도 프랜차이즈 창업을 기웃거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경제적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실패가 일생 동안 따라다닌다.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기의 꿈을 가질 수 있는 구조라면 취업보다는 창업을 택하는 도전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 재목들이다.
진정으로 ‘빚을 권하는 사회’가 되려면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보장돼야 한다. 사업 실패가 신용불량으로 내몰리고 다시는 은행권 거래마저 막히는 이런 사회에서는 곧 ‘인생실패’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