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특히 문대통령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개헌은 국민참여와 국민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 되어야 하며,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구체적으로 지방분권을 강조하였다. 불과 4일전 여수에서 열린 지방자치의 날 기념행사에서 개헌의 핵심은 혁신적인 지방분권임을 언급한 이후 또 다시 강조함으로써 개헌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무척 강하구나 하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무척이나 아쉬운 점은 지방분권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까지 들어 강조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출범 이후 제2공화국을 제외하고는 역대 모든 정부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여왔다. 특히 60~70년대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통령제가 더욱 빛을 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모든 권력이 대통령 1 인에게 집중되어 소위 제왕적 권력행사가 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해, 역대 모든 정권들에서 친인척이나 측근들에 의한 비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소위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분이 단 한분도 없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이러한 모든 원인을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또한 대통령제는 권력의 독점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하여 모든 정치 과정을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갔으며, 건전한 정책경쟁보다 극단적인 정치투쟁에 골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아무런 부끄럼 없이 내로남불이 자행되고 있다. 헌법 규정대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정당은 유력한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개인 파당으로 전락해버렸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은 온 데 간 데 없고, 마치 멸치 떼 몰리듯이 특정 보스를 중심으로 탈당과 창당을 밥 먹듯 하니 웬만한 국회의원 당적이 대여섯 번 씩이나 되는 코미디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지난 겨울 광화문에서 시작된 촛불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국정농단을 단죄하였다. 권력과 금력의 불법 거래, 권력기관의 불법행위 등 권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천박한 인식에 철퇴를 가하였다. 그 결과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였고, 대통령과 관련자들은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촛불에 담긴 진정한 민심은 그저 박근혜 정부의 퇴진만을 원하였던 것이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건설을 요구한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과거의 잘못된 모든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적폐청산이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문제 해결의 전제이지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제도의 변화에서 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지방분권 역시 권력분산을 위한 중요한 제도적 장치임에 틀림이 없으며 개헌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 최고 권력에 대한 분산과 확고한 견제야말로 개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