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원을 들여 홍보해도 어려운 일이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에 대한 전력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그동안 정부가 아무리 홍보해도 무관심하기만 했던 에너지 믹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한발 더 나아가 공감까지 얻어냈으니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설명이다.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공론화 과정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무엇보다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당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원전 건설은 선과 악을 나누는 것과 같은 이분법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나라는 기저발전원으로 원전을 쓰고 있는 데다 유럽과 달리 전기수입이 불가능하다. 에너지 안보와 복지 등 당장의 필요와 함께 미래 세대의 안전까지 고려하는 등 보다 큰 차원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론화 과정은 우리 사회에도 의미 있는 선물을 선사했다. 국가적 갈등과제를 풀기 위해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는 과정 그 자체로 우리 민주주의를 진일보 하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때문인지 이번 공론화위의 건설 재개 권고를 두고 ‘절묘한 선택’이라는 평이 다수다. 공사를 재개하게 만들어 당장의 경제적 손해를 막는 한편,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한 에너지 정책 전환을 추진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향후 에너지 정책 수립에 충분히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되고 이산화탄소 발생 등의 약점을 지닌 석탄발전의 비중이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위한 연구개발과 보급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같은 탈원전, 탈석탄발전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더라도 반드시 병행돼야 할 점은 산업 경쟁력제고다. 원전 건설과 운용기술 수출은 물론 해체와 관련한 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
특히 세계 원전해체 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1960~1980년대에 건설한 원전의 사용기한이 임박함에 따라 2020년대 이후 해체에 들어가는 원전이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2015~2019년에는 76기가 해체되며 2020년대에는 183기가 해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대와 2040년대 이후에도 각각 127기, 89기의 원전이 해체될 예정이다. 관련해 필요한 비용도 2014년 기준 44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해체 사업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엔지니어링, 제염(除染)·철거, 부지 복원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연구실 안에서의 기술 뿐만 아니라 실제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아직 기술수준이 낮지만 지난 6월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를 즉시해체 방식으로 해체하면서 관련 기술과 경험을 확보한다면 향후 수출에도 나설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정부의 친환경 탈원전 에너지정책과 원자력 산업경쟁력 제고는 별개의 범주에서 다뤄져야 한다. 국내 원전산업을 미래 먹거리 창출에 앞장서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신승훈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