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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만에 아내의 품에 안긴 6·25 호국영웅
66년만에 아내의 품에 안긴 6·25 호국영웅
  • 박영훈 기자
  • 승인 2017.10.24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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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故 김창헌 일병 유해 유족에 전달

 

24일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1951.8.9∼1951.9.18)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김창헌 일병의 부인 황용녀 씨의 성남 자택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권석필 성남 중원구청장이 황씨와 악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박영훈 기자)
24일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1951.8.9∼1951.9.18)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김창헌 일병의 부인 황용녀 씨의 성남 자택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권석필 성남 중원구청장이 황씨와 악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박영훈 기자)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호국영웅이 66년 만에 아내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김창헌 일병의 유해를 부인 황용녀(94·경기 성남)씨의 자택을 방문해 전달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날 국유단은 황용녀씨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갖고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 함께 발굴된 인식표, 도장 등 유품을 전달했다.

김창헌 일병은 1924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삼죽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1944년 4월 황용녀씨와 결혼했다.

이후 그는 1951년 1월 28세의 나이로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자원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에 배치됐다.

당시 유엔군은 공산군 측의 무성의로 휴전 회담이 지연되자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제한된 공격작전을 계속하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에는 투입된 김 일병이 소속된 국군 8사단은 강원도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해 적을 압박하기 위한 전투를 계속했다.

국군 8사단은 1차 노전평 전투에 이어 2차 전투에서 고지군 요충지를 점령해 서화축선 일대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간 벌어진 2차 전투에서 국군 8사단은 전사 90명, 부상 536명, 실종 17명 등의 큰 피해를 보았다.

김 일병도 2차 노전평 전투 중 적의 총탄에 피해를 입어 1951년 8월 25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고(故) 김창헌 일병 인식표.(사진=국방부 제공)
고(故) 김창헌 일병 인식표.(사진=국방부 제공)

그의 유해는 지난7월 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무명 900고지 일대에서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0184968)와 한자로 이름이 새겨진 도장,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그러나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는 끝자리가 불명확해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이에 유해발굴단의 유가족찾기팀 탐문관은 병적자료와 보훈처, 현충원이 보유한 6·25 전사자 자료 분석에 돌입했다.

군번 0184960부터 0184969을 가지고 있는 전사자와 김창○(金昌○) 두 글자의 한자로 시작되는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 끝에 지난 7월6일 최종적으로 군번 0184968, 일병 김창헌을 확인했다.

이어 유해의 유전자와 그가 남기고 간 딸의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최종 그의 가족 관계가 확인되면서 김창헌씨는 66년 만에 아내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번 6·25 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5번째이다.

김 일병의 아내 황용녀 씨는 "남편이 6·25전쟁으로 자원입대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남편은 복중의 아이를 남자로 생각해 '김인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고, 10일 후 딸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소중히 지어준 아이의 이름을 바꿀 수 없어 그대로 쓰면서 홀로 딸을 키웠다"면서 "이제라도 남편의 유해를 찾아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덧붙였다.

신원이 확인된 김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향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 바쳐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故) 김창헌 일병 유해 발굴 당시 모습.(사진=국방부 제공)
고(故) 김창헌 일병 유해 발굴 당시 모습.(사진=국방부 제공)

[신아일보] 박영훈 기자 yhpark@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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