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시인 최영미가 젊은 날의 기억을 되씹던 ‘청춘의 잔치’ 얘기가 아니다. 글로벌 경기를 뒤흔들던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자 각국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자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던 ‘유동성의 잔치’가 끝났다는 말이다.
미국 연준이 지난해 말부터 정책금리를 높이고 보유자산 축소에 나서면서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도 그동안 진행해왔던 경기부양 정책을 어떻게 거둬들일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일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3.0%로 끌어올리고 기준금리도 인상할 것이라는 신호를 내놓았다. 이주열 한은총재는 이날 ‘금융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여건이 성숙해가고 있다’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내달 30일 열릴 예정인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 간 지속해온 저금리·유동성의 시대를 마감하고, 금리상승과 긴축의 시대로 접어드는 분기점에 다다른 것이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8월말 기준으로 2485도6000억 원 규모로 사상 최대치다. 한은이 그동안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리고 시중에 유동성을 확대 공급한 결과다.
한은이 금리를 인상해 시중에 풀려 있는 유동자금을 거둬들이면 그동안 유동성으로 초래된 부작용을 줄여나갈 수 있고, 향후 경기과열로 인한 인플레에도 선제 대응할 힘이 생긴다.
통화완화 정책은 경기회복을 위한 부양책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에 이상 과열 현상을 불러 일으켰고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버렸다. 진즉에 정리됐어야 할 적자기업들이 통화완화 정책에 기대어 연명하면서 부실의 규모를 키웠고, 이제 빚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좀비기업 양산으로 또 다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할 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긴축의 고통이 다가온다. 당장 한은은 내달 금리인상을 단행할 분위기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한 발 빨리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반도체 등 주요 품목에서 수출이 늘어났고 설비투자도 꾸준하다는 점을 들며 경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통화완화로 인한 유동성 확대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을 때라는 지적이다.
어차피 유동성을 흡수할 것이라면 금융당국의 선제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취약계층 등을 배려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한은의 통화정책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국내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인 파급효과를 주기 때문에 그 충격이 막대하다.
당장 14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를 짊어진 가계에는 이자상환 부담이 커진다. 좀비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게 된다.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가격도 요동을 치며 급격히 냉각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긴축으로의 전환은 이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금융당국은 금리 인상이후 경기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며 후속인상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24일 정부가 내놓을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