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MBC가 10월4일부터 동시 파업을 벌이며,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론·방송학자들도 두 공영방송의 파업과 정상화 노력을 적극 지지하면서, 비정상적인 방송 상황을 방조하거나 묵인해 온 것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힘들이 모여져 양대 공영방송이 빠른 시일내에 국민을 위한 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기대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필요성을 제기해본다. 국내에서 방송의 유형과 이에 대한 정의는 ‘방송법’에 나타나지만,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는 ‘방송법’ 제2조(용어의 정의)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지, 사적으로 소유된 사영 또는 민영 방송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방송법’ 제43조~제68조까지 한국방송공사(KBS)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는 없다. 다만 제44조가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 실현”, “지역과 주변 여건에 관계없이 양질의 방송서비스 제공”, “시청자의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송프로그램·방송서비스 및 방송기술 연구와 개발”, “국내외 민족문화 창달과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의 개발과 방송”으로 KBS의 공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공적 책임은 비구체적이고, 모든 방송에게 요구하고 있는 ‘방송법’ 제5조의 방송의 공적책임, 제6조의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다. 공영방송 MBC와 EBS의 설립과 관련된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은 해당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에 대한 언급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방송법’ 어디에서도 공영방송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공영방송은 존재하지만, 공영방송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적 조항조차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공영방송이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았다는 것 이외에는 사회로부터 다른 방송사들과 차별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적으로 소유되었지만, 공영방송의 재원이 대단히 상업적이라는 것이다. KBS는 텔레비전수신료보다는 방송광고에 더 의존하고 있고, MBC는 방송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EBS는 텔레비전수신료나 방송광고보다는 교재출판을 통한 수익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영국의 BBC, 독일의 ARD와 ZDF, 일본의 NHK를 공영방송의 모범사례로 학습해왔고, 이들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사회구성원들 전체를 위하는 모범적 공영방송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정치권력에 포획된 방송사, 정치에 의해 쉽게 망가지는 공영방송의 모습만을 현 시점에서 확인하고 있다.
정부는 기존의 ‘방송법’과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을 통합하는 ‘통합방송법’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통합방송법’도 공영방송의 정의와 사회적 책무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어떠한 공영방송을 사회적 유산으로 전수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차제에 방송사의 재정수요를 독립적으로 조사하여 텔레비전수신료를 산정하는 독일의 수신료산정위원회(KEF)와 같은 기구 또는 협의체를 도입해, 수십년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 확충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