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허용 논란 확산
‘존엄사' 허용 논란 확산
  • 김두평기자
  • 승인 2008.09.0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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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신촌 세브란스병원서 첫 소송 현장검증
병원의 치료를 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김천수)가 1일 국내 최초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가족들이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해달라며 낸 민사소송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면서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오전 10시께 뇌사상태 환자인 김모씨(75·여)가 입원해 있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비공개로 실시된 이날 현장검증에서 재판부는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김씨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김씨를 직접 살펴본 뒤 주치의에 대한 심문을 진행했다.

이날 현장검증에서는 김씨 가족 측 변호사와 병원 측 변호사도 모두 참석해 입장을 밝혔다.

병원 측은 "김씨의 생존 가능성이 5%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뇌사 판정이 나지 않았고 회복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없다"며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반면 김씨 가족 측 변호사는 "현 단계에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5%가 아니라 거의 없다고 판단되며 일반 진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가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더라도 김씨의 사망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씨 가족 측 변호사는 이어 "이번에 법원이 존엄사에 대한 법 기준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날 현장검증에서 존엄사 허용 여부와 관련해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있는 김씨의 생존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와 존엄사를 허용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졌는지 여부 등을 주요 쟁점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서부지법 관계자는 "환자 가족 측에서 환자를 봐달라고 요청해 현장검증을 실시한 것"이라면서도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가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1997년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은 형사소송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국내 최초로 이뤄지는 존엄사 관련 민사소송"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적인 장치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1997년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뇌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인 환자 가족들의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가 환자 가족과 담당의사가 살인방조 혐의로 처벌됐던 사건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의료계도 존엄사에 대한 법 제정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우선적으로는 환자가 살아날 확률이 5%만 되도 인공호흡기를 뗄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도 존엄사와 관련한 의견이 분분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적인 제도가 정리되고 명확한 입장이 나오길 바란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어 "이번 판결이 의료법 윤리학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내법 해석이 어떻게 될 지에 관심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씨 자녀들은 지난 7월29일 열린 변론준비기일에서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가 회복가능성이 있는지 실제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 정확한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재판부에 현장검증을 요청했다.

김씨는 지난 2월 세브란스병원에서 내시경으로 폐 조직검사를 받던 중 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이에 김씨 자녀들은 지난 6월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해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과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에 법원은 "김씨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며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존엄사'를 둘러싼 이번 소송의 선고공판은 26일 오전 10시 서부지법 305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며, 법원의 선고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