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가받은 故 이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명저를 남겼다. ‘좌우의 날개’는 진보와 보수의 존재론적 당위성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두 진영이 대립을 넘어 상호보완 발전을 지향하자는, 정치적 수사를 넘어선다. 사상사적으로 보자면 정반합의 역동성을 주장한 헤겔의 변증법은 물론 중용(中庸)의 도(道)를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에까지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인간의 삶과 연관된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명제로 평가한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물론 경제분야에도 통용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논하는 자리라면 어디서든 소득주도성장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성장이 한계를 노출했기에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소득주도성장’만으로는 국가경제가 비상할 수 없다. 양적 성장, 즉 새 정부의 표현인 ‘혁신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만 경제가 안정화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사람중심의 경제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의 3대축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회적 논의가 진행됐지만, 혁신성장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방안이나 개념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전 정권의 슬로건이었던 ‘창조경제’가 결국 허황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념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개념이 모호하니 구체적 실행방안이 나올 수가 없었다. 사업을 추진해도 이것이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한 핵심수단인지 핵심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인지 구분이 명확치 않았다.
“뻔하디 뻔한 기획안일지라도 제목에 ‘창조’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통과된다”는 말이 관가의 정설로 나돌 정도였으니 관련 예산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적확히 쓰였는지 검토해볼 필요성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새 정부도 마찬가지다. 빠른 시일 내에 혁신성장의 개념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정책방안과 그에 대한 소요예산, 예상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 새 정부의 혁신성장은 IMF 이후 민간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혁신’과 과거로부터 쓰이던 ‘성장’이라는 개념을 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혁신성장’이라는 말은 ‘혁신을 통한 성장’이라는 언어적 표현의 테두리를 넘지 못한다. 신기술이나 발상의 전환 등을 통해 ‘성과’를 창출해내야만 비로서 ‘혁신’과 ‘성장’ 양자를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제용어와 개념을 동원해 화려하게 포장한다 해도 결국 그 본질은 전방위적 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같은 혁신성장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부처간 칸막이를 뛰어넘는 포괄적 협업을 고도화 시키는 것이다.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과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앞장선다고 달성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경제 컨트롤타워가 각각의 경제 관련 부처에서 내놓는 정책이나 각종 규제를 조율하는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한다.
혁신성장의 주인공은 개별 경제주체들이지만, 이들이 활력 넘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