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신용사회다. 신용이 좋으면 경제적 혜택이 주어지지만 신용도가 떨어지면 그만큼 페널티를 감수해야 한다. 사회생활 전반에 통용되는 말이지만 특히 금융거래에서는 절감하는 얘기다.
최근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했다. 은행권에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어졌다.
문제는 신용등급 4~6등급인 중신용자들이 은행에서 대출길이 막히면서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으로 내몰렸다. 은행이 1~3등급인 고신용자에게만 대출을 집중하면서 당장 자금이 필요한 중신용자들이 비싼 이자를 감당해야할 2금융권으로 차자야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고신용자 신용대출은 50조3000억 원 늘었지만 중신용자 신용대출은 5조9000억 원 증가한데 그쳤다. 특히 은행은 이 기간에 중신용자 신용대출을 11조7000억 원 줄었다. 7월말 기준 은행의 고신용자 신용대출 비중이 77.9%로 나타나면서 은행권이 안정적인 대출만 선호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생겨났다.
반면 비은행금융기관에서 중신용자 신용대출은 카드사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17조6000억 원 증가했다. 지난 6월말 기준 중신용자의 대출비중이 저축은행 63.7%, 신용카드사도 60.2%인 것과 비교할 때 판이한 차이를 보였다.
단순히 중신용자가 은행권에서 제2금융권으로 옮긴 현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정부의 금융정책으로 인해 중신용자들은 어쩔 수 없이 높은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신용대출 금리는 금융기관별로 큰 차이가 난다. 지난 6월 기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5.8%이고 상호금융은 7.5%였다. 보험사는 10.5%, 신용카드사는 14.9%, 저축은행 21.4%, 대부업체 27.6%인 신용대출 금리는 기관에 따라 4배 이상의 격차를 나타냈다.
빚을 갚은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의 부채가 6월말 기준 80조4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이며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거나 하위 30%에 포함되는 저소득자에 해당하는 차주를 말한다.
최근 미국 연준이 내달부터 보유자산 축소를 개시한다는 소식에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당장 금리인상은 동결한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경제상황 개선을 감안할 때 금리상승 기조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당연히 취약차주들은 금리인상 시기가 도래하면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취약차주 뿐만 아니라 은행거래보다 비싼 2금융권으로 등 떠밀린 중신용자들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2017년 현재는 신용도가 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시대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도 예외 규정이 있듯이 저신용·중신용자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모럴 해저드를 조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용이란 오랫동안 쌓인 거래에서 만들어지는 무형의 자산이다. 계약을 중시하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단지 중신용자와 저신용자가 감내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면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에 사전에 좋은 방안을 모색하자는 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당당히 패자부활전이 통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