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0일 공개한 금융감독원 기관운영 감사보고서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감사결과 드러난 금감원의 각종 비리와 방만함은 민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금감원 직원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장모계좌를 개설하고, 2013∼2016년에 7244회에 걸쳐 누계 735억 원어치의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을 사고판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본인 자금과 장모의 자금을 함께 운용했다. B씨는 처형 계좌를 통해 8억 원어치의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을 사고팔았다가 적발됐다.
감사원 감사결과 금감원 임직원 총 44명이 '자본시장법'을 어겼고, 12명은 음주운전으로 기소됐음에도 금감원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관련 법을 잘 지키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법을 어긴 것이다.
채용비리도 빠지지 않았다. 감사 결과 2016년도 신입·민원처리 전문직원 채용에서 선발 인원과 평가방식 등을 자의적으로 조정해 합격자가 뒤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 김수일 전 부원장과 서태종 수석부원장, 이병삼 부원장보가 연루됐다고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에게 통보했으며, 국장 1명 면직, 팀장 등 3명 정직, 직원 2명은 경징계 이상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의 최고위층부터 일반 직원까지 연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직과 인력 운영의 방만함도 최악이다. 전 직원 1927명 가운데 1∼3급 직원이 45.2%(871명)에 달하고, 1·2급 직원 중 63명은 무보직 상태로 팀원 등으로 배치된 사실이 드러났다.
무보직 1·2급들은 하위직급 직원과 동일하게 감독·검사업무를 하면서 급여만 많이 수령하고 있는 상태다. 1급 무보직자의 작년 평균급여는 1억4000여만 원, 2급 무보직자는 1억3000여만 원이다.
직위 보직자가 전 직원의 20.6%(397명)에 달하는 등 직위 수가 너무 많고, 292개 팀의 팀원이 평균 3.9명에 불과했다.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적정 관리직 비율은 9%, 평균 팀원 수는 15명이다. 국·실장 등 직위자의 1인당 인건비는 비직위자보다 연간 1000만∼3000만 원 정도 더 소요된다.
연간 78억 원을 투입해 20명을 상주시키는 8개 해외사무소도 방만함의 대표적 사례다. 8개 국외사무소가 수집한 업무정보 525건을 분석한 결과 98.2%(516건)가 인터넷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수집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비리와 방만함에 젖어 있는 조직이 제 역할을 다하기 바라는 것은 무리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대출자와 저축성 보험상품 소비자에 대한 보호도 미흡했다. 저축은행·대부업체의 법정금리 초과대출에 대한 지도·감독이 부적정했고 카드슈랑스 등 보험상품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공지하지 않았다.
이같은 감사결과에 대해 금감원 내부에서는 당사자들의 거듭된 소명에도 미리 짜인 ‘프레임’에 따라 진행됐다는 불만이 많다고 한다. 특히 중징계 대상자들은 감사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물론 행정심판과 소송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적반하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스스로 법을 어기고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강도 높은 내부개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규모의 인사도 단행해야 한다. 그것이 밀려드는 업무를 말없이 수행하는 다수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초석이다.